고석근 / 시인 술꾼 봉도 - 이동순 흰 눈은 나려 고죽 마을을 덮었는데 새알산도 하얗고 밭엔 못 뽑은 배추가 그대로 눈 뒤집어썼는데 이런 날 봉도는 술 생각이 나서 땅 속에 어찌 누워 있나 속알못 쪽 봉도 무덤으로 가는 길도 이미 눈이 파묻혔다. 오늘 같은 날 봉도는 필시 누웠던 땅에서 일어나 머리에 눈을 맞으며 주막집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으리라
‘아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어색할 때가 있다. 태어나서 몇 살까지를 ‘아이’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지만, ‘어리다’라는 기준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리다’에는 ‘어리석다’라는 의미가 포함된 이유도 있다.‘학생’이라는 말도 그렇다. 학교에 소속되어 배우는 위치라면 ‘학생’이라고
고석근 / 시인 싸움 뒤 - 가네코 미스즈 외톨이가 되었다 외톨이가 되었다 멍석 위는 쓸쓸해 난 몰라 그 애가 먼저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쓸쓸해 인형도 외톨이가 되었다 인형을 끌어안아도 쓸쓸해 살구꽃이 폴폴 포르르 멍석 위는 쓸쓸해 정년퇴직을 한 학기 앞 둔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의 무례한 행동과 그 학생 부모의 항의와 끈질긴 민원에 끝내
김성국 / 종주대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양이 많지는 않다는 정보. 조금씩 비 온다는 시각이 늦어지길래 비를 피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속에 사당역에서 일행들과 차량에 올라탔습니다.정오부터 비가 온다길래 일찍 내려올 요량으로 삼수령(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에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찍고 새벽 3시 20분에 43번째 백두대간행을 시작합니다.
고석근 / 시인 태양의 유혹 - 황인숙 내가 태양을 향해 똑바로 얼굴을 치켜들자 그는 찡긋 너! 라고 속삭인다 북적이는 행인들 속에서 나는 오, 나만의 나만의, 나만의, 나만의 햇님 나의, 라고 더듬거린다 그 누가 알리 태양이 굶주린 거머리처럼 내 자신을 빨고 이 많은 행인들 속에서 나, 감쪽같이 환락의 떪을 나, 잠시 영원히 추위를 벗고 내 몸에 너무나도
이성우 / 6.15산악회 회원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앞. 집 먼 사람부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서 9시가 조금 넘으니 대다수 집결한다.용인에서 출발해서 오는 한 회원이 7km 남은 거리를 택시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 온다. 선생님들이라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아무도 발걸음을 떼려하지 않는다.지루함도 떨칠 겸 이종문 615합창단 산악대장
고석근 / 시인 주문진 - 나해철 아아 거기 푸른 물 곁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맑고 깨끗한 풍광 속에 모두 가난하고 가난하여 욕되지 않다 살고 죽는 빈손이 한줌 동해물처럼 말갛게 들여다보여 흰 조약돌 같다. 오늘 새벽에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입주민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5명이 숨지고
고석근 / 시인 네게로 - 최승자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코올처럼 알코올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대학 때 함께 스터디를 하며 꿈을 꾸었던 옛 벗에게서 문자가 왔다. 만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죽기 전에 한번 봐야지!’로 시작하던 글이 ‘
고석근 / 시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 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랑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 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김태현 / 종주대원 오늘은 무박으로 새벽부터 시작하는 태백산 장거리 구간이다. 게다가 일기예보는 최저기온 영하 9도, 낮에도 영상 4도로 바람까지 불어 일출시간에는 체감기온은 영하 15도로 예상되어 다들 최악의 산행을 예상하며 걱정들이 대단하다.오늘 산행 참가자는 18명으로 내가 참가한 대간 구간 중 최대인원이 참석했다,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 안에서 처음
좀처럼 북미관계의 교착은 풀릴기미가 없고 남북관계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아직 식지 않고 있다. 아니 여전히 뜨겁다.당면해서는 남과 북이 직면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나아가 민족 경제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희망찬 길이라는 공감과 기대가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석근 / 시인 화내고 있다 - 이성미 꽃에게 화내고 있다. 풀에게 화내고 있다. 깃털을 집어 던지며 지푸라기를 집어 던지며 발을 구르면서. 화가 수시로 활활 타오르는 중년 여인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나 크단다. 그래서 일찍이 이혼을 했다. 그녀는 심리 상담을 공부하며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단다. 학창 시절에 남들에게는 항상 아버지를
2008년 가을, 외교부 출입을 시작했던 무렵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터무니없는 슬로건을 내걸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공들여 쌓아온 남북관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뜻이 맞는 기자들과 함께 저명한 외교안보전문가 조성렬 박사와 만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저녁 모임에서 조 박사가 “안보-안보 교환
고석근 / 시인 오늘밤은 106호에서 시작되었다- 김행숙못된 아이들은 이렇게 항상 머리 위에서 논다. 106호 고독한 남자는 갑자기 참을 수 없었다. 천장이 아니라 천둥 같잖아. 오늘밤은 조용해야 해.오늘밤은 쉬어야 해. 106호 고독한 남자는 206호 고독한 여자가 된다. 우리 집엔 애들이 없어요. 그리고 난 쭉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306호는 살인
가깝고도 먼 북한을 알기 위한 여러 접근법이 있겠지만 북녘의 예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곳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물론 훌륭한 안내자가 필요할 것이고 이철주의 신간 『조선, 예술로 읽다』(네잎클로버)는 적격이랄 수 있다.문화기획자인 이철주는 누구보다 북녘 예술단 초청공연이나 남북합동공연의 레퍼토리를 많이 구상해본 경험이 있고,
김재선 / 6.15산악회 총대장 오늘은 우리 6.15산악회 (회장 권오헌) 연례행사인 시산제 산행이다. 연일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던 날씨도 오늘은 사정을 봐준 듯 비교적 맑은 편이며 기온도 봄 날씨답게 포근하다.당고개역에 9시까지 21명의 회원이 모였다. 양심수후원회, 통일뉴스, 6.15합창단, 범민련 등 소속 단체에서 통일을 염원하며 실천에 애쓰시는 팔십
고석근 / 시인 노인들 - 기형도 감당하기 벅찬 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지난해 초겨울 새벽에 서울 마포
이 책에서 다루는 질문은 △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해? △북한을 어떻게 믿어? △통일되면 뭘 할 수 있는데? △우리 정말 함께 살 수 있을까? 이다.저자인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인생을 찾아가는 학교를 표방하는 '로드스콜라'의 청년들과 함께한 4주간의 특강 '행복한 평화, 너무 쉬운 통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