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외로움의 폭력 - 최승자 내 뒤에서 누군가 슬픔의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하고 있다. 요즈음의 꿈은 예감으로 젖어 있다. 무서운 원색의 화면, 그 배경에 내리는 비 그 배후에 내리는 피. 죽음으로도 끌 수 없는 고독의 핏물은 흘러내려 언제나 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인다.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
북녘 화가 황영준(1919~2002)의 유작 200여 점을 만나 볼 수 있는 ‘황영준 탄생 100주년 - 봄이 온다’ 전시회가 서울과 인천에서 각각 열린다.서울전시회는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인천전시회는 내년 1월 10일부터 18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서울전시 개막식은 26일 오후 3시, 인천전시 개막식은
고석근 / 시인 올페 - 김종삼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만든 얘기다 나는 죽어서도 나의 직업은 시가 못 된다 우주복처럼 월곡(月谷)에 둥둥 떠 있다 귀환 시각 미정 내가 가진 첫 번째 직업은 철도공무원이었다. 기관조사. 기관사를 보조하는 자리였다. 그 당시엔 철도고등학교라는 철도공무원을 양성하는 국립고등학교가 있었다. 학비
이성우 / 산악회원 11월 17일 이날 산행지는 광명시 소재 도덕산(183m)이다. 당초 예정에 없었던 도덕산을 오르게 된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6.15산악회는 매년 말에 그 다음해 산행일정을 모두 정해왔고 11월 산행지도 이왕에 정해져있었다. 한데 이번에는 6.15합창단 10주년 기념공연 날짜가 11월 17일 같은 날 오후로 잡혀버렸다. 장소는 오
고석근 / 시인 국화 - 호시노 토미히로 기쁨이 모인 것보다 슬픔이 모인 게 행복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드네 강한 사람들이 모인 것보다 약한 사람들이 모인 게 진실에 가까운 느낌이 드네 행복이 모인 것보다 불행이 모인 게 사랑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드네. 어린 시절, 나는 학교만 다녀오면 채소밭으로 갔다. 나와 동생들은 한 골씩 차지하고서 밭을 맸다. 형제
“고구려의 건국 연대, 첫 도읍과 평양의 위치를 올바로 밝혀서 우리 고구려사를 체계화시키는 기초자료를 한국 역사학계에 내놓으려 시도했다.”얼핏 위 글만 보아서는 20세기 초중반 즈음 책 서문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은 2019년 최신간 『고구려와 위만조선의 경계』(한국학술정보) 서문에 등장하는 문구다.아니, 아직도 우리 역사학계에서 고구려의 건국 연대와 첫 도읍
고석근 / 시인 사생 대회 날 - 양정자 나무 몇 그루 물감으로 범벅해 놓고 시라고 몇 줄 끄적끄적해놓고 야성의 눈을 번뜩이며 온통 푸른 숲속을 들쑤시고 다니며 개구리도 잡고 풀나비도 쫓고 칡뿌리도 캐어보는 아이들 모습이 시보다 그림보다 더욱 아름답네 연둣빛 나무 사이로 아이들 재깔거리는 말소리 웃음소리 망초꽃 무리처럼 다닥다닥 피어나 잔칫집처럼 풍성하고
커피숍과 핸드폰이 대세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학과 민족주의는 왠지 낡고 고루한 느낌을 준다. 세계화 시대에 굳이 국학이니 민족주의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여기에 답을 준 책이 나왔다. 국학연구소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이 진행한 ‘2018 국학 월례강좌 - 국학과 민족주의 만나다’의 12강좌 결과물을 오롯이 담은 『나를 찾아 우리로 가는 길 - 국학과 민족주
고석근 / 시인 의자였는데 - 김언희 의자였는데 내가앉으니도마였다 베개였는데 내가베니작두였다 사람이었는데내가안으니 내가안으니포장육 손톱발톱이길어나는포장육 막다른데가따로없었다 꽃한송이꽃절벽 사람하나사람절벽 여기이절벽에서저기저 절벽으로내입에서내어놓은 거미줄에매달려간댕 간댕건너간다끊어 질듯끊어질듯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고향에 갔는데, 돌아올 수가 없다. 버스
역사가 망각과의 투쟁이라면,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남겨야 한다. 오직 남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날마다 머릿속에 글을 써온 사람이 있다. 비전향장기수 임방규 선생이다.그가 날마다 머릿속에 써온 글을 실지로 써서 최근 두 개의 책을 펴냈다. 하나는 두 권으로 된 자서전이고, 다른 하나는 답사기다. 전자의 제목
고석근 / 시인 음주(飮酒) - 제5수- 도연명 사람들 사는 데 농막 짓고 살아도 수레 타고와 시끄럽게 찾는 이 없노라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 보니 마음이 멀어지다 보니 사는 곳마저 외지구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꽃 따서 들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가을 산색 저녁나절 더욱 아름답고 날새들 짝지어 집으로 돌아오는구나 이러한 경지에 참된 뜻이 있으니 말로는
재야의 탁월한 분석가였던 고(故) 김남식 선생은 “며칠만 쉬어도 정세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제도권을 대표하는 전략가였던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한반도 남쪽 땅에는 이 고단하고 어려운 과업을 치열하게 수행해온 사람들이 있다. ‘운동가’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니, ‘정세 읽기’는 운동가
고석근 / 시인 이불을 꿰매면서 - 박노해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 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이성우 / 산악회원 10월 20일 9시 도봉산 탐방지원쎈타 앞.조금 늦게 도착하니 권오헌 선생님께서 밝은 미소로 맞아주신다. 바쁜 일정 탓에 두어 번 결석하셨는데 오늘은 함께 해주셨다. 선생님 연세에 험산을 앞에 두고 짓는 여유 있는 미소를 다 헤아리긴 어렵지만 함께하는 등산이 좋으신 것만은 틀림없다. 인사 나누는 사이에 등 뒤로 누군가가 배낭을 틀어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