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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숲으로 된 성벽 - 기형도 저녁노을이 지면 신들의 상점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 어느 골동품 상인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5.0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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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 고정희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 버스 속에서도 추운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 잔 끓이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에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4.2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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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평
이진석
2020.04.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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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풀베기 - 하청호 풀을 벤다 머리채 잡듯 거머쥐고 낫질을 한다 얘야, 아무리 잡풀이지만 그렇게 잡으면 못쓴다. 풀을 잡은 아버지 손을 가만히 보니 풀을 쓰다듬듯 감싸고 있다. 아버지 눈빛이 하늘색 풀꽃처럼 맑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유행할 때, TV에서 그의 열강하는 모습을 수시로 보게 되었을 때, 내 귀에도 그의 강의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4.22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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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천국의 예감- 전윤호아이가 장난감 상자를 뒤집어 버린 듯계절이 흐트러지고폭우가 쏟아졌다축대가 무너지고길이 끊겼다고립된 채 물바다가 된 마을들 이제 천둥과 번개가 가득한 하늘아래빌딩들은 폐쇄되고신전은 무너질 것이다폐허마다 운명처럼덩굴이 올라갈 것이다은행들은 바오밥 나무를 껴안은 채 사라지고관공서엔 보아뱀이 알을 품을 것이다즐거운 열대우림바지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4.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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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평
이진석
2020.04.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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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빅 브라더 - 서정춘 어쩔 수 없네 바쁜 길 걷다가 고샅길로 드네 다급한 소피 시언코롬 보네 어디서 하르른지 파르른지 인기척 있네 찔금하고 이마 들고 우러를 보네 모자 쓴 낮달이 아까 본 얼굴이네 아까 보고 또 보네 평소에 하던 강의들이 다 휴강에 들어가 거의 매일 뒷산에 오른다. 봄, 꽃향기가 은은하다. 쉬엄쉬엄 산길을 간다. 살아있음!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4.0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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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영혼에 대하여- 황인숙1순수한 영혼과 타락한 현실간의 대립이환멸, 이라는 책을 읽었다.그것이 뭐가 환멸이야? 자랑이지.타락한 영혼과 순수한 현실, 의 대립, 이야말로,하긴 순수한 영혼아, 네가 어찌 환멸을 알겠니?2영혼이란 게 몸 안에서불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멀미가 난다.속이 울렁거려.토할 것 같아. 영혼이든 뭐든.나는 영혼이나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4.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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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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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정체불명의 슬픔을 표본하다 - 이경임 나비 한 마리가 내게로 날아온다 어지럽다, 멀미가 난다, 울컥 토할 것만 같다 나비가 창틀에 앉는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나비의 한쪽 날개를 잡는다 나비의 다른 쪽 날개가 허공에서 파르르 떤다 나비의 몸에서 꽃가루들이 흩날린다 나비의 두 날개를 포개어 잡는다 위태롭던 한 마리의 정적이 고요해진다 고요해진 슬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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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봄의 언어- 헤르만 헤세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들은 다 안다.살아라, 자라라, 꽃피워라, 꿈꾸어라, 사랑하라,기뻐하라, 새로운 충동을 느껴라.몸을 내맡겨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백발노인들은 다 안다.노인이여, 땅에 묻히거라,씩씩한 소년에게 네 자리를 물려주어라.몸을 내맡겨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코로나 1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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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개미 - 이선영 개미 한 마리가 방안을 기어다닌다 개미가 내 몸에 닿을까 봐 나는 개미를 피해 자꾸 방을 옮겨다닌다 방이 좁아진다 나는 지친다 개미 한 마리가 방 하나를 다 가져간다 내 마음의 방안에 개미 한 마리가 기어들었다 개미가 온 방안을 돌아다닌다 나가지 않는 개미 한 마리를 피하려다 내 마음의 단칸방 하나가 통째로 개미의 차지가 된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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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맨 위, 맨 아래 - 알렌 알렉산더 밀른 아가 아가 어디 가니? 저기 저기 저 언덕 꼭대기까지. 자꾸자꾸 올라가서 맨 위에 닿을 때까지 나는 나는 자꾸자꾸 올라갈 거야.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랬다간 어쩔래? 그럼 다시 맨 아래로 내려오지 뭐. 대학 시절 여러 종교 단체를 전전했다. 사이비 종교로 비난 받는 단체들에도 가 보았다. 고물고물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2.2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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