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 종주대원 작년 11월 설악산 공룡능선을 넘고 마등령에서 쉬면서 대원들은 “세상이 기원 전후로 나뉘고 있으나, 이제는 공룡능선을 탄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한다”는 후일담을 나누며 피곤함도 잊고 벅차고 흐뭇한 기분을 안은 채 하산길을 재촉하였던 것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사방을 둘러봐도 장엄한 비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룡능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
고석근 / 시인 북어(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
심주이 / 총무, 종주대원 긴장 속 출발7개월 만에 재개하는 백두대간 산행, 늦은 밤 집에서 나서는 발걸음이 떨린다.오늘 산행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지만, 24km의 장거리이다.지난달 ‘북한산성 16성문 종주’로 체력 단련을 한다고는 했지만 산행은 언제나 부딪혀봐야 그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금요일 밤 11시 30분, 사당역에서 11명의 대원이 모여 출발했다
고석근 / 시인 먼 길- 윤석중아기가 잠드는 걸보고 가려고아빠는 머리맡에앉아 계시고,아빠가 가시는 걸보고 자려고아기는 말똥말똥잠을 안 자고. 말을 잘 안 듣는 아이 둘을 발가벗겨서(교육을 위해) 산 속에 내버렸다는 비정한 어머니의 기사를 읽었다.그 아이들은 산 속에서 내려오며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간신히 등산객에게 발견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
고석근 / 시인 골방에서- 박운식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 있다어떤 것은 가마니에 독에 있는 것도 있고조롱박에 넣어서 매달아 놓은 것도 있다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그들의 꿈꾸는 꿈의 빛깔들도 어른거리고 있다나는 그런 씨앗들의 거짓 없는 속삭임들이 좋아서꿈의 빛깔들이 너무 좋아
권진덕 / 6.15산악회 회원 결혼 후와 전으로 나누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결혼 전에는 이산 저산 좀 다녔는데 결혼 후에는 산에 갈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옆지기가 산을 좋아하면 좋았을 텐데 결혼 전에 지리산에 함께 오른 뒤 산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았다.그러다 올해 임방규 선생님의 ‘빨치산 전적지 답사기’를 읽고 더 늦기 전에 이런 곳을 좀
고석근 / 시인 존재의 이유 - 릴케 아! 우리는 세월을 헤아려 여기저기에 단락을 만들고, 중지하고, 또 시작하고 그리고 두 사이에서 어물거리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친한 관계에 있고, 태어나고, 자라고 자기 자신으로 교육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고석근 / 시인 봄눈 - 유희윤 “금방 가야 할 걸뭐하러 내려왔니?”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내가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읍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저녁 무렵에 외할머니가 오셨다. 백발의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으신 외할머니. 옛 사진처럼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무슨 얘기를 밤이
고석근 / 시인 전화를 받는 나무 - 이상희 여보세요 전화를 걸었으면 말씀을 하셔야지요 계절이 다 가도록 수화기를 들고 있잖아요 이것 보세요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요 팔도 굳었네요 나무가 되고 말았네요 새들이 날아오네요 졸졸 흐르는 물소리 당신의 붉은 피 흐르는 소리만 들으면서 내 팔엔 초록잎이 돋겠네요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에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