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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점 - 네루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도 없다. 얼마 전에 17살 미성년 소녀가 7살 초등학교 2학년 여아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경악하지만 사실 ‘일어날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암 투병을 한 분이 말한다. 병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7.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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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7.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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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수업 - 김진경 일요일 저녁 텅 빈 운동장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렇지, 비어 있음이 늘 가장 많은 걸 가르치지 현장 학습을 가던 도중 한 초등학생이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고 그 아이를 다음 휴게소에 내려 준 후 학부모가 올 때까지 혼자 있게 한 교사를 경찰이 ‘아동 학대’로 조사를 하고 교육청에서는 그 교사를 직위 해제했다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7.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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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내 마음의 겨울 - 나해철 입김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다 사라진다 건너가보지 못하고 소멸이다 그와 같다 내 마음 뒷산에 올라간다. 고즈넉하다.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애완견을 보며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다시 적막해진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산에서는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눴다.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6.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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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란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6.2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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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파장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 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6.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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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 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허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첫 기억은 ‘자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의 첫 기억은 서너 살 때 시골에서 살다가 읍내로 이사를 간 기억이다. 이사 간 집의 큰 마루 밑에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6.0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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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유다 - 황인숙 그리움이 크면 환상. 환상의 비눗방울을 그저 보시라. 만지지 말라. 만지지 말라. 만지지 마, 말라니까! 그리움이 크고 겁이 없으면 그를 다친다. 갓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적인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엄마를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찌 엄마가 마냥 사랑만 줄 수 있으랴. 아이는 ‘사랑이 없는 엄마’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5.3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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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트렁크- 김언희이 가죽 트렁크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지퍼를 열면몸뚱어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어지는수취거부로반송되어져 온토막 난 추억이 비닐에 싸인 채 쑤셔 박혀 있는, 이렇게코를 찌르는, 이렇게엽기적인 갓 태어난 아이는 희미한 의식이 있을 뿐이다.차츰 세상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그러다 아이는 ‘나(자아.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5.2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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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이봐, 오늘 내가 김언희 문이, 벌컥 열리고 헐레벌떡 추억은 되돌아온다 마치 잊은 것이라도 있다는 듯이 추악한 삶보다 끔직한 것은 추악한 추억 까마귀 고기를 먹어가며 추억은 정욕과 망각의 까마귀 나를 구워 먹으며 추억은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헐떡거리며 추억은 백 살까지 발기할지 모른다* 이미 백 살일까, 이봐 오늘 내가 백 살이야? * S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5.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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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니체는 말한다. 주인의 도덕은 ‘좋음과 싫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5.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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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귀머거리 할아버지 - 한인현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가셔요?” “오오냐, 순인 집에 있나 보더라.” “아아뇨, 어디 가시냐구요?” “글쎄 가 보아라, 공부하나 보더라.”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데, 중년 여인 셋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뒤의 여자 한 분이 앞서가는 여자에게 말한다. “왜 그렇게 빨리 가?” “빨리 가는 게 아닌데, 저녁을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5.0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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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을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 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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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7.04.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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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기대지 않고 - 이바라기 노리코 이제 기성의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이제 기성의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이제 기성의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이제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아 속 깊이 배운 것은 이 정도 자신의 이목 자신의 두 다리로만 서 있다고 뭐가 불편하단 말인가 기대겠다면 그것은 의자 등에나 기댈 뿐 우리에겐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4.1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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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 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4.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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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봄 구경 - 환성 지안 지팡이 끌고 깊은 골 따라 발길 닿는 대로 봄 경치 즐긴다 돌아올 땐 옷깃에 향기 가득 담겨서 나비가 먼 길 사람 따라 온다 한 초등학교 동창생이 전화를 했다. 구속된 ‘그네’가 불쌍하단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심정으로 ‘그네’를 보는 것 같다. ‘동향(同鄕)’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하나다. 그는 ‘그네’의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4.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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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등 - 이도윤 새끼들이 모두 떠난 사람의 쭈그러진 늙은 등은 허전하여 바라볼수록 눈물이 난다 위대하여라 등이여 이 땅의 모든 새끼들을 업어낸 외로움이여 한 할머니가 ‘약장수’에게 사기를 당했단다. 수 백 만원을 날렸다고 딸이 울부짖는다. “다 제 탓이에요.” 그 딸은 몇 년 동안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엄마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3.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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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3.2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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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중립)의 초례청 앞에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3.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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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7.03.0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