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저물어갑니다. 지난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얼어붙기 시작한 한반도 정세는 4년이 지나도록 해빙되기는커녕 더욱더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올해엔 오히려 ‘한미(일) 대 북’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양측 사이에 군사적 갈등이 더 깊어졌습니다. 통일뉴스는 안타깝고 아쉬운 한해를 돌아보면서, [2022년 송년특집]을 ①한반도 주변 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 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지난 3월 24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을 시험발사했다. 3월 25일 [
거울다시 찾은 노동자의 날 ○.... 제75회 「메이데이」 기념식이 1일 상오 10시반 시공관에서 한국노동조합총협의회 주최로 올려졌다. 수명의 혁신정당 지도자를 비롯하여 천여 명이 모여 올려진 이날 기념식은 비록 그 규모는 간소했으나 이(승만)독재의 유제를 벗어나 노동자의 기념일을 다시 찾은 뜻 깊은 행사였다.○.... 「빵, 평화, 자유」의 이념으로 힘차게 전진하자는 「슬로간」을 높이 걸고 모여든 맹원 들은 578만의 실업자가 굶주림 속에서 허덕이는 비참한 현실을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민⋅참 양원 의장과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流域)과 그 남북 지역에서부터 한강 유역의 북부 지역을 흔히들 경기도 북부라고 한다. 쉽게 호칭하여 경기도의 한수이북지역(漢水以北地域)이라 한다.한수이북지역과 한수이남지역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가 먹는 재래의 김치에서도 한수이북지역의 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는 않지만, 한수이남지역의 김치는 고춧가루나 젓갈이 더 들어가 맛이 자극적이다. 한수이북 김치의 표준은 개성김치이다.경기도 한수이북지역은 조선시대에도 하나의 문화적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
십장생도의 연원을 말하다별제가 화원들을 모두 모아 조회를 한다.“오늘은 특별히 홍문관 응교 나리를 모시고 십장생도의 연혁에 대해 듣고자 하오.”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학술과 언론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홍문관직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이었으므로 출세가 보장되었다. 정승, 판서 중에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응교(應敎)는 정4품 관직이다.“[십장생도]의 연원에 대해 강독을 해 달라는 예조판서 대감과 별제의 특별한 부탁을 받았습니다.문헌을 찾고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더군요. 하지
‘서사를 담은 삶들’은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을 듣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혹자는 박정희식 산업화의 신화가 깨진 것처럼 과거 민주화 ‘운동’의 신화도 깨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운동’적 삶을 살아가는 많은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에는 역사적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친구가 때로는 열사가 되고 일상적인 활동이 역사에 큰 사건으로 남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인 ‘서사’를 안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순간들을 담고자 합니다. 수수의 ‘서사를 담은 삶들’ 연재는 격주 화요일에 게재됩니다. 수수
제75회 「메이데이」 선언 만국의 노동자가 축하하고 시위하며 기념하는 5월 1일 제75회 「메이데이」를 맞이하였다.우리 백만노동자는 이날을 맞이하여 민주적으로 싸우기 위하여 자주적으로 뭉친 한국노동조합총협의회 기치아래 총결집하여 한국의 민주노동운동 재건과 부패 독선 악질 반민주분자를 숙청하고 복지사회건설의 역군으로 과감한 투쟁을 불요히 전개할 것을 만천하에 엄숙히 선언한다.과거 16년간의 한국노동운동사를 회고하건대 공산당과 싸우기 위하여 우리는 피를 흘렸고 조국을 지켜오는데 젊은 정열을 바쳤다. 그러나 우리는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제주의 노래비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에 시비(詩碑)나 노래비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십수 년 전,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에 서귀포와 관련된 시비 12기와 노래비 3기가 섰고, 이후에 몇 기가 늘었다.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 시비와 노래비가 한두 개씩 섰다.그중에는 “왜? 이것을 세웠지?”하고 의문이 들기도 하는 그냥 유행가 수준의 노래비도 있고, 내용을 음미해 볼 만한 제대로 된 시비와 노래비도 있다.시비나 노래비를 세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비(碑)는 금석학(
1714년 숙종대왕이 재위한 지 40여년이 되었다.그 해 봄, 영남에서 기근이 들었다. 한성 진율청에서는 쌀을 보냈다.날이 오랫동안 가물어 임금이 몸소 향을 피우며 묵도했다.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팔도의 환곡을 고루 탕감하도록 하고, 전라도 충청도의 고을에는 세금을 줄어서 내도록 했다.9월, 대신과 당상관, 종친의 70세 이상 부인에게 쌀과 고기, 면포를 하사했다.팔도 벼슬아치의 80세 이상 부인과 평민 90세 이상 여인 모두에게 쌀과 고기를 하사하라고 교지를 내렸다.다음 날 아침, 조회에 참석했다.이조판서가 보고한다.
혁명(革命) 한 해가 지났는데... 노다지의 맥(脈)을 더듬어서오늘도 삶을 위(爲)해 「레일」로 10리(哩) 샛길로 10리(哩)인간(人間)에서 격하(格下)된 두더지 생활(生活) 하루 여섯 번 - 마을의 변두리를 병풍처럼 둘러친 뫼와 뫼뿌리에 숨은 들 고양이 울음처럼 「사이렌」의 앙칼지고 구슬픈 여음이 긴 꼬리를 끌며 마을을 칭칭 휘감는다.정오와 밤의 통금 예비 및 통금시간 말고도 여덟 시간의 간격을 두고 울리는 그 소리들은 수천 명의 광부들을 존엄한 「인간」의 위치로부터 「두더지」로 격하시키기 위해 육중한 암층(岩層)밑 검고 누른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북측의 허준 유적필자는 통일뉴스의 ‘국혼의 재발견’ (11)회 연재 “국제적 베스트셀러 허준의 『동의보감』과 도가의학”에서 허준에 대한 필자의 관점을 일부 언급한 바 있다. “‘문화 제주, 문화 Korea’를 위하여” (14)회 연재에서도 “허준의 고향은‥‥‥, 옛 ‘장단군 대강면 우근리’의 양천허씨 집성촌이다. 그곳은 현재 북측의 ‘황해북도 장풍군 국화리’이다. 허준의 귀양지는‥‥‥, ‘평안북도 의주’이며, 허준은 여기에서 『동의보감』을 탈고하였다”라고 하였다.또한 필자는
1501년 중종반정이 일어난다.연산군은 폐위되고 강화도로 유배되어 두 달 만에 역병으로 죽었다.조광조는 1515년 사간원 정언이 된다. 그의 나이 34세였다.파격적인 상소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정6품에 불과한 관직으로 권력의 실세로 떠올랐다.조광조는 현령과(천거제도)를 실시해 젊은 선비들을 대거 발탁하여 고위직에 앉혔다.조광조는 철저한 성리학자였으며 사림세력과 함께 도학정치(道學政治)를 실현하고자 했다.도학정치란 유학, 성리학을 중심으로 펼치는 정치이며,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본보기로 삼았다.새롭게 조정에 들어온 조광조를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우리 민족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이다.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은 북부여에서 말을 키웠다는 신화적 기록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말이 등장하며 가야토기에서도 말 모양의 토기가 있다. 철령에서 고구려시대 지층에서 무쇠로 만든 말 모습이 출토된 바 있다.말은 고대의 무사에게는 전차(戰車)를 끄는 동력이었으며, 20세기 전반기까지만 노동력이었으니, 1960년대 후반까지도 서울에서 마차가 운용되었다. 말은 소만큼이나 인간에게 유용한 가축이었다.1. 마을이 세운 리립 박물관박물관을 나라(國)
1451년 늦여름,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무계정사에 모여 들었다.초정을 받은 사람도 있고,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은 사람도 있었다.무계정사 주변에 심어 놓은 복숭아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하인, 가마꾼들은 복숭아를 따먹으며 잡담을 나누었다.“여기 무계정사 주변의 복숭아나무는 여러 곳에서 옮겨 심었다는 말을 들었네.한양의 권세 있는 집에서는 복숭아나무를 심는다고 난리가 아닐세.”“안평대군의 뜻이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지. 우리야 그 뜻을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맛있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면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이순신의 함경도 근무남에서나 북에서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지금의 함경북도 라선특별시에 한동안 배치되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국토(國土)를 지켰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나도 30대 초반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1980년대 중반에 충무공 이순신 연구가로 활동하였던 애서가 이종학(1927~2002, 독도박물관 설립자) 선생으로부터 배운 사실이다. 이종학 선생은 강단에는 서지 않았으나 역사정
무계정사에 복숭아나무를 심다1450년 2월 세종이 붕어했다.뒤를 이어 문종이 즉위했다.안평대군은 국상과 즉위식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문종이 즉위하고 몇 개월이 지나자 궁궐에서는 더 이상 안평대군을 찾지 않았다.안평대군은 비애당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간간히 부왕인 세종대왕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아바마마의 뜻을 따라 조선을 태평성대의 나라로 만들겠습니다.”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의 모습이 백성이 꿈꾸는 태평성대와 같다고 믿었다.‘중국이 아닌 조선 땅에서 무릉도원을 찾아야 한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나의 첫 시도2016년 5월이다. 당시 나는 제주의 백광익 화백과 경북 울진의 황재종 화백 두 분과 함께 ‘북경아트페어’와 ‘북경보리박매유한공사’의 춘계박매회를 갔다가 왔다. 3박 4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여행은 아트페어나 경매의 참여는 아니었지만, 중국의 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을 보게 하여 두 분에게 충격을 주고자 한 이유에서였다. 두 분은 실제로 큰 충격을 받았다.북경의 ‘중국농업전람관’ 전체를 빌려 진행 중인 보리의 춘계박매는 1만 점이 넘게 출품되어 있었으니, 한국 전체
비애당 정원에는 복사꽃이 활짝 피었다.이른 아침, 안견은 초본을 들고 안평대군을 찾았다.처소에는 이미 박팽년과 성삼문이 와 있었다.“어제 밤늦게까지 그렸다고 들었소. 어찌 몸은 괜찮은 것이오?”“육신은 조금 피곤하오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사옵니다.”“어디 초본을 봅시다.”130cm 크기의 종이에 그린 초본이 방바닥에 펼쳐졌다.안평대군은 앉았다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그림을 살펴본다.“박팽년, 성삼문 두 분께서 초본 양쪽을 잡고 일어나 보시겠소?”“초본이 한 눈에 보이니 훨씬 좋습니다.”그렇게 한참이나 초본을 살펴본 후 자리에 앉았다
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톺아보기 10에서 북이 기후 위기를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로 인식하고 환경보호 사업 강화, 재생에너지 개발 및 이용 확대, 유기농법 도입, 절약형 생산방식 확산 등을 추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북의 재생에너지(북에서는 ‘자연에네르기’라고 함) 개발 및 이용 현황을 살펴본다. 생활 전력 확보에 적극적 먼저 북은 살림집, 학교, 공공기관 등에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 기술을 도입해서 생활 전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아래 왼쪽 사진은 북의 과학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김진우벌써 30년이 좀 못 되었다. 1993년이나 4년쯤 일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자주 나오던 김 모 씨가 골동 전문 갤러리를 운영하던 미국 동부 뉴저지를 찾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일주 김진우(金振宇)의 증손자라고 하기에 미국에서 그의 활동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전 일이고, 그때 이후로는 그를 만난 적이 없어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를 않는다.당시 나는 그로부터 김진우에 대하여 약간의 단편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