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영화배우 출신의 탈북자 김혜영의 증언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북에서 최고의 영화인 양성소라고 할 수 있는 평양연극영화대학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2564). 거기서 김혜영은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최하층에서는 학생들이 선발되
1. 이명자 이명자는 『북한영화사』(2007)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1992년 김정일의 을 신호탄으로 다부작 영화인 과 같이 새로운 영화들이 시작되었는데 다부작 영화가 아닌 영화들에서 변화는 더욱 큰 것이었다. …(중략)…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영화들
참고로 많은 연구자들이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거의 예외 없이 ‘수령형상영화’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것을 언급하는 연구자 모두가 그것에 대하여 명확한 개념을 정의하지 않은 채 각자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여 자기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남쪽의 연구자들 사이에 하나로 통일된 ‘수령형상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있기 훨씬 전이며, 특히 이 영화 시리즈가 처음 시작되는 1973년은 그 동안 전후 복구와 체제정비에 온 나라가 힘쓰던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체제를 정비하는 사회주의헌법(1972년 12월
지난 연재 글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북한영화에 대해 연구한 이명자의 글에 대하여 다시한번 서술하면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북은 그 동안 계급 차별을 통한 통제의 사회였는데, 위기에 처한 1990년대 이후는 체제 위기에 대응하여 내부 통합을 유도하는 광폭정치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영화 속에서는 지난 시절 적대계급으로 분류되었던 사람들
최근 “모든 계급을 감싸 안아 이끌겠다는 광폭정치”는 “북한사회가 처한 어려움으로 인해 내부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러한 북의 현실이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에서 비추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은 그 이전의 영화 속에서도 얼마든지 쉽게 찾아 질 수 있는 것이었다. 단지 민족과 운명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해당 영화들의
최근 북한영화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영상물은 바로 다부작 예술영화 이다. 먼저 각 연구자들의 글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앞서 이번 글은 간단히 이란 영화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일단 이라는 북한 최대의 다부작 예술영화에 대하여 그 기본적인 것을 알아야 이야기의 전개가 가능
장편소설 『높새바람』의 작가 홍석중이 북의 정책적 흐름인 보수화에 동참하지 않아 그만 숙청되고 말았다고 전한다
북한영화에 대한 글들을 보다 보면 많은 남쪽의 연구자들은 북쪽 영화제작자들 가운데 유독 배우들에 대하여 관심이 높다. 특히 그것도 여성배우에 대하여서만 그 관심은 집중된다. 이는 연구자들의 성별과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성은 연구자들의 개인적 관심사항이니 이곳에서는 논의를 피하고, 그 가운데 꽤 많은 연구자들의 글 속에 등장하는 월북 여배우 문예
지난 4월 1일 있었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 남북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치러진 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일방적인 남측 선수들만의 응원전이 펼쳐질 뿐 예년과 같이 공동응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필자도 일단 경기장 입구에서부터 통일기를 빼앗기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남북공동응원단이 사전에 조직적으
식민지 시대 일제에 항거할 것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이들은 북의 호전성과 무력 적화통일을 느낀다면 영화 속 그 장면에서 이들이 원했던 대사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것이 참 궁금하다.
현재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공통적인 하나의 문제점은 본서에서 계속 이야기했듯이 연구논문의 근거가 객관적 자료에 있지 않고, 연구자의 주관적 기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북한영화의 흐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 흐름, 즉 변화라는 것은 연속선 상에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일단 많은 1차 자료들에 대한
아래의 인용문은 지난 주 연재 글에서 살펴본 것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다. 하지만 앞선 이명자의 글에서는 ‘사회주의 위기가 여성문제를 영화화’하였다 식의 좀 더 광범위한 문제였다면, 이번 변혜정의 글은 구체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사와 육아노동장면 등을 거론하며 자기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 역시 그의 그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
북은 경제위기로 여성문제가 심각해졌으며, 그 징표로 최근의 영화 속에서 ‘그 동안 언급도 안 하던 여성문제’가 등장하게
아래 글은 여성학적 측면에서 북한영화에 대한 흐름을 분석한 것 가운데 일부이다. 이 글은 1970년대 북한영화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로 형상화되었다고 비판하며, 여성을 혁명의 담당자라기 보다 남성의 매개에 의해서만 혁명적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켰다고 결론내린다.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전사가 아닌
군복을 벗고 붉은 치마저고리로 꾸미고 친정에 다니러 온 새댁으로 가장하면서...
아래 연구자는 북한영화 속에서 ‘여자의 성’은 혁명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가히 냉전시대의 전형적인 글 같지만 필자가 분석하고자 하는 이 글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한 해 앞둔 1999년에 쓰여진 글이다. 이미 전세계에서 미소 양극체제가 무너지고 탈냉전의 바람 속에 다극화 시대가 열린 시기에 쓰여진 글이었다.
‘TV에서 영화의 편성비율이 40%를 상회하고 있다’는 주장은 쉽게 확인 가능한 것이므로 조사를 해 보았다. 참고로 북의 편성표는 통일부의 홈페이지에서 매일 업데이트가 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평양연극영화대학교 출신으로 북에서 영화배우를 하였다는 탈북자 김혜영의 증언을 기록한 자료를 보면서 북한영화에 대하여 공부했던 필자는 일단 의문점이 생겼다. 하지만 거의 모든 남쪽 국민들이 북의 영화에 대하여 어떠한 정보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증언을 하는 사람이 북에서 영화배우를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증언에 대하여 신뢰를 보낼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