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평양몽(夢)의 하늘』이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확 눈길이 갔다.관계 교착을 넘어 한쪽에선 남북관계를 '두개의 적대적 국가관계'로 새로 규정한 마당이고 또 다른 한편에선 '원칙있는 남북관계'와 '자유로운 통일 대한민국' 외에는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슬퍼런 세상에 '평양몽'이라니.제목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 보니 책의 부제는 '에세이로 읽는 북한 도시 비전'이다. 지은이 박원호 선생에 대해서는 건설분야 현역 기술사이자 시인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평양의 도시학을 전문적 식견과 유려한 필치로 그려냈을 것이라 짐작되어
일제 강점기가 벌써 100여년 전의 일인지라 매해 서거 100주기가 된 독립운동가들도 많아져 그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본다.“한국민족주의역사학의 태두(泰斗)요 종장(宗匠)”인 무원(茂園)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김교현의 생애와 역사인식』이 100주기인 지난해를 넘기고서야 나왔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이 ‘무원 김교헌 서거 100주기를 추모하다’는 부제를 달아 도서출판 선인에서 출간한 것.김교헌은 경주김씨 명문가 장손으로 18세인 1885년 과거에 급제해 벼슬 길에 올라 1910년 종2품 가선
최근 KBS에서 방영 중인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 화제다. 우리에게는 먼 과거로만 느껴지던 고려시대가 한발 우리 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다.연말에 고려시대로 우리를 이끌어줄 또다른 길라잡이 『고려왕릉 기행』(굿북플러스)이 나왔다. 『북한 국보유적 기행』과 『북한박물관 기행』을 펴낸 바 있는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의 노작이다.태조부터 34대 공양왕까지 왕과 왕후들의 왕릉, 개성지역 56기와 강화도 등 남한 지역 6기, 총 62기에 관한 종합 안내서이자 연구서인 셈이다. 송악산을 주산으로 자리잡은 고려의 수도 개
이재봉 /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이삼성 한림대 명예교수가 또 묵직한 책을 냈습니다. 교수 정년을 2년 앞두고 은퇴해 집필에 집중하며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한길사, 2023.11)을 펴낸 겁니다. 1990년대 초 백낙청 선생이 제기해온 ‘한반도 분단체제’를 넘어, 2000년대 초부터 “좁은 한반도적 시각을 벗어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 관해 깊이 연구해왔거든요. 미-중 갈등과 신냉전,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동아시아 냉전, 한국전쟁과 정전체제 및 평화체제, 그리고 한미동맹 등의 굵직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습니다.이삼
북한이 지난 21일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발사,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 ‘북한’이라고 하면 ‘식량난’이 먼저 떠오르지만 인공위성 발사에 이어 정찰위성 발사까지 ‘남한’을 앞지르는 기술력을 과시한 셈이다.“여기 한 국가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국가를 정식 국가명으로 부르지 못한다.”북한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가장 가까운 우리 민족의 반쪽이지만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조선’을 김광수의 신간 『전략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선인)은 ‘정명’(正名)으로 호출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세월호’에서 만난 윤미향 의원2020년 3월 총선 전까지 ‘윤미향’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국회의원 당선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윤미향으로 인터넷에 도배되고 나서야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나도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를 보고 ‘혹시’ 하는 의심을 했었다. 기사를 비교하고 검토하고 나서야 ‘혹시’는 ‘역시’로 바뀔 수 있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어떻게든 위로하고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윤미향 의원을 실제로 처음 본 건 2021년 7
지난 25년 동안 세상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고 강물의 흐름과 강 건너편 사람들에 집중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온 한 사람이 있다.1997년부터 조선과 중국 접경 압록, 두만강 연안을 다니며 잊혀져가는 우리 민족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 온 조천현 작가다.지난 2016년 10월 사진집 『압록강 건너 사람들』(통일뉴스)을 출간한 이래 2019년 사진이야기책 『압록강 아이들』(보리출판사)와 조중접경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실상을 담은 책 『탈북자』(보리출판사)를 잇달아 낸 조천현 작가가 이번엔 '뗏목'이라는 주제에
장창준 / 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완전한 패배였다. 정용일과 정창현 두 선배가 공동으로 집필한 『북한 박물관 기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두 선배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금수산태양궁전은 저자들의 말처럼 “금기의 영역”이다. 여기를 다녀온 사람치고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언론의 뭇매를 안 맞은 사람이 없다. 혹 몰래 다녀오고선 다녀왔다고 말하지 못해 속앓이하는 남측 관광객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이 두 저자는 ‘금기의 영역’을 남측 당국의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와타나베 노부유키 기자는 2013년 도쿄를 중심으로 관동지방 각지의 박물관에서 열린 관동재지진 90주년 기획전을 취재하던 중 행사장 한쪽에 쓸쓸하게 자리한 '조선인 학살'코너에 눈길이 끌려 담당자에게 질문을 던졌다.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기억이 생생한 시기였으므로 그곳에는 90년전에 벌어진 관동대지진의 발생원인과 피해규모, 행정기관의 대응 등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초보적이고 소박한 질문에 전시 담당 교수나 학예사는 "잘 모르겠다. 미증유의 사태에 정신이상이 생긴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일로부터 무려 70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지나갔다.7.27 전후로 남쪽에서는 미국의 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에 이어 핵추진잠수함(SSN) 애나폴리스함이 입항했고, 북쪽에서는 러시아 국방장관과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열병식’이 열려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등으로 무력시위를 벌였다.정전 70년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전례없이 높아진 배경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가로놓여 있
20대 후반의 나이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사평역에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 주던 시인이었다.이제 시인은 기다리던 막차를 만났을까?그곳에서 태어나 '광주'를 만나고, 시를 쓰던 그날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나이 칠십을 넘긴 곽재구 시인이 등단 이후 처음으로 동시집을 펴냈다.『공부 못했지?』가 제목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공부 못했던 사람은 이 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사업회, 이사장 민현식)가 최근 『미리 만나는 겨레말작은사전』을 펴냈다.지난해 10월 'ㄱ-ㅁ'까지 보급판으로 출간한 것을 이번엔 'ㄱ-ㅎ' 까지 보완해 통합판으로 펴낸 것.사업회는 지난 2005년 2월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기로 합의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을 시작한 이래 18년간 축적한 성과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공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겨레말작은사전' 편찬을 추진해 왔다.이번 통합판 '겨레말작은사전'에는 청소년과 일반 국민이 남북 언어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휘를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인 정권에 대해 '퇴진'과 '타도'가 빗발치는, 이런 현상이 분명 정상적인 건 아니다.역대 최소 득표차인 0.73%, 24만 여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대선결과를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진영갈등이 유독 심해서 나타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절차와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도 뚜렷이 없다. 어쨌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 돌아가는 4년 단임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에서 '승자독식'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결과가 분명해진 지금 그런 걸
장면 1.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아이들이 있었다.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았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부분 '보았다'고 했다. 그땐 지각만해도 교문에서 귀싸대기를 맞았는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전에는 그것이 일상적인 학교의 풍경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세상은, 더디지만 꼭 바뀐다고 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많아질수록 변화는 더욱 분명하고 빨리 온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장면 2.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대부분
압축 성장과 급속한 세계화를 겪으며 우리 입맛도 변하고 있다. 큰 건물에는 으레 브랜드 커피숍이 들어서고 심지어는 한 건물에 커피숍만 여러 개인 곳도 많다. ‘입맛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정관념도 이젠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평범한 우리 보다 더 극적인 환경 변화를 겪으면서도 어머니 손맛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특별한 사연을 담은 글들이 책으로 엮였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들녘)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저자인 탈북민 위영금은 중국에서 북한으로 이주한 부모님과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 고향에서 자랐고 1998년 두만강
자유기고가 정승행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기치를 내걸고 단군조선이 건국된 이래 우리 겨레는 반만년 동안 하나의 강토에서 하나의 핏줄과 언어를 가지고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채 운명공동체의 주인으로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하지만 현재는 수많은 내외의 도전으로 우리 겨레의 운명이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1860년대 중반부터 외세와 본격적으로 접촉한 이래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더구나 지금은 민족이 분단되는 아픔을 겪은 것도 모자라 긴장과 대결을 넘어 전쟁 위기의 짙은 먹구름마저
“그러나 사람의 정신이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 분의 변하지 아니하고 굴하지 않는 그 ‘매움(烈)’의 끼쳐 줌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뒤에 남아 있는 우리는 그 끼침으로 하여금 아무쪼록 더 빛나게, 더 장엄하게 할 책임이 있다.”(178쪽)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음력으로 올해 나와야 할 마지막 책이 출간됐다. 『임오교변 - 대종교 탄압과 박해』(선인 출판사)가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42년 임오년(壬午年)에 발생한 일제의 대종교 탄압 사건이다. 이때 혹독한 고문과 수감생활로 사망한 열 분, 임오십현(壬午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95살의 나이로 무덤속에 들어가며 남긴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유명한 묘비명이다.원문(I knews if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을 오역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 풍자적 묘비명을 접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과 삶에 대해 한번은 더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살아있는 동안, 죽는 그날까지 크고 작은 일에 갈팡질팡,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는 인생사를
평양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2008년쯤이다. 이후 동료 기자들은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잠깐 남북관계가 열린 틈에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금강산만 두 차례 다녀왔을 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물며 평양과 북한 곳곳의 모습도 많이 변했으리라.“...정신없이 소석회와 토지개량재를 등짐으로 퍼 날랐다. 등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철철흐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들이 뿌린 유기질 비료만 1정보당 20톤 이상이었다. 이렇게 약 4만 정보의 자연 풀판(잡초를 뽑고 먹이들을 심은 산등성이 풀밭)과 1만 정보
중국이 20차 당대회를 치르고 23일 개최한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선출한 지도부는 말 그대로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 됐음을 확인시켜줬다. 세계적 관심 속에 시진핑 주석이 3연임에 성공한 것은 물론 7명의 당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측근들로 구성한 것이다.G2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치른 이번 당대회와 지도부 선출에 대해 정치적 해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더 눈길을 돌려야 할 곳은 의외로 다른 그림일지도 모른다.시진핑 주석은 지난 16일 20차 당대회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