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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활웅자료실] <시사촌평> 독재의 발톱은 뽑아버려야

저자
이활웅
출처
통일뉴스
발행일
2004-10-13
<시사촌평> 독재의 발톱은 뽑아버려야

정부와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방침에 한나라당과 수구보수세력이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국면을 타개해보려고 열린우리당은 4가지 대안을 내놓고 당론을 정해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보법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보법이 없으면 정말 대북 안보에 지장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국방장관, 군 장병들이 모조리 바지저고리가 아닌 바에야, 북한보다 인구, 국민소득, 경제규모, 무역규모, 군사비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는 남한이 국보법이 없다고 북한을 못 당해내겠는가? 현행 형법으로도 안보위협 행위를 능히 다스릴 수 있다고 형법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 국보법은 단지 “필요없는 법”인가? 즉 없애도 좋지만 안 없애도 상관없는 법인가? 그렇지 않다. 국보법은 단지 “필요없는 법”이 아니라 “있으면 해로운 법”, 따라서 “꼭 없애야하는 법”이다. 보안법폐지를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는 이 점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

5.16 군사반란 이후 32년에 걸친 암울한 군사독재체제 하에서 경찰과 검찰과 정보기관은 많은 민주시민들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취조했다. 그 과정에서 수사요원들은 피의자들을 패고, 달아매고, 주리틀고, 잠 안 재우고, 전기로 지지고, 물을 먹이는 등 끔찍한 고문을 자행했다. 때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기도 했다. 헌법은 엄연히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 한다”(12조 2항)고 밝혔지만 헌법도 국가보안법의 위세에 눌려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국보법 위반 혐의로 억울한 고문을 받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거나 죽어간 정치인, 언론인, 학자, 교수, 종교인, 학생, 근로자 또는 무명시민의 숫자는 관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몇 천 명을 족히 넘을 것이다. 이참에 차라리 국가인권위원회로 하여금 그 숫자와 아울러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명 그리고 가해내용 등을 소상히 조사 발표케 하고, 그 기초 위에서 국보법의 존폐여부를 국민적 합의로 결정케 하면 어떨까?

한국이 민주화되었다면 그것은 독재와 국보법에 항거한 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의 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국보법이라는 독재의 발톱을 뽑아버리지 않는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의 뿌리에 접목시킨 하나의 우분여화(牛糞麗花)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국보법폐지 반대론자들도 이 법이 혹독한 고문정치의 도구였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제 군사독재가 없어졌으니 이 법을 그냥 둬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한 신원(伸寃)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개탄할 일이다.

민주주의는 남의 권리와 자유에 가해진 침해에 대해 자기의 권리와 자유에 가해진 침해와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항거하는 국민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지켜지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는 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고문을 받아도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난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을 고문하는 도구로 사용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2004년 10월 13일자 통일뉴스 시사촌평1 자료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2 112.160.1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