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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활웅자료실] <칼럼>우리는 신라의 후예들인가?

저자
이활웅
출처
통일뉴스
발행일
2004-08-13
<칼럼>우리는 신라의 후예들인가?

고구려는 장장 8세기에 걸쳐 한반도 북부와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세력을 떨치던 우리민족의 자랑스런 나라였다. 그러나 동족인 신라는 당나라와 손잡고 협공하여 669년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신라는 이보다 9년 전에도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역시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적이 있었다.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우리민족의 세력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43년 후에 고구려 유민들이 현지 소수 부족들의 협력을 얻어 발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227년 후 글안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918년, 한반도 북부에서 일어나 나라를 세운 고려가 신라와 후백제를 굴복시킨 후 잠시 실지회복의 뜻을 품었지만 1170년 무신 정중부의 난 이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부패가 날로 심해지면서 마침내는 몽고의 속국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1392년에 고려를 뒤엎고 등장한 이씨의 조선왕조는 당초부터 북방의 실지회복에는 뜻이 없고 오직 왕실과 사대부의 정권안정을 위해 밖으로는 중국에 사대하고 안으로는 엄격한 신분제도로 백성을 수탈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국력의 극심한 피폐를 초래하여 1910년 마침내 일본에게 먹히고 말았다.

35년에 걸친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또 미국에 의해 남북으로 갈리고 말았으며 그 후 3년 간 동족상잔의 내전을 겪고 지금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고구려가 멸망한 후 지금까지 1,335년 간 우리민족의 정치적 판도는 계속 축소돼 갔다.

그 동안 민간의 북방 진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만주 지방에는 해방직후만 하더라도 적어도 300만 이상으로 추산되는 조선족 인구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으로 갈리어 싸우는 조국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던 그들은 점차로 중국인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곳 이름도 우리가 부르던 북간도가 아니라 중국사람들이 지어준 연변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금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제것으로 집어 삼키려하고 있다. 그것은 절대 안될 일이라고 한국에서는 관민(官民)이 모두 들고일어나 핏대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실효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가장 심하게 손상시킨 것은 5.16군사반란

이런 마당에 박근혜 대표와 그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뜬금없이 국가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정치싸움에 새로운 불을 지르고 있다. 의문사진상 규명문제, 친일행위 조사문제, 북한의 서해한계선 침입문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 등에서 정부가 국가정체성을 훼손하고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은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로 민주개혁, 평화통일, 민족단결, 사회적 폐습과 불의의 타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국민의 기회균등과 최고도의 능력발휘,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인류평화와 공영에의 기여 등을 열거하고 있다. 또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그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장 심하게 손상시킨 것은, 이 헌법을 근본적으로 유린하고 국민의 주권행사를 강제적으로 전면 봉쇄한 5.16 군사반란과, 그 후 32년이나 계속된 혹독한 군사독재체제와 유신독재체제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군사독재 및 유신독재체제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한 정당이며, 박근혜 대표는 바로 군사반란의 수괴인 박정희 장군의 여식이다. 한편, 지금의 여당은 그 동안 반독재운동, 즉 대한민국의 굴절된 정체성을 바로잡으려는 운동을 이끌던 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그런즉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의 정체성 시비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5.16 반란세력들이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은 것처럼, 그 후신인 한나라당은 아직도 “반북”을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요소로 오인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접근노력을 반국가적이라 비난했으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를 북한노동당 제2중대라 불렀으며 지난 대선 때에는 노무현 후보를 북한 노동당 후보라고 비방했다. 대북 경제협력사업은 “퍼주기”라고 악평했으며 남북화해에 앞장섰던 인사들을 특검법으로 묶어 처벌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이 아직도 만만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중국이 우리를 깔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런 것은 이런 상황을 중국은 과연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그들은 고구려의 멸망으로 중국 땅이 되어버린 지역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져서 살다가 점차로 중국의 주민으로 동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또 그들은 한반도 내에서 여러 왕조들의 흥망성쇠가 계속됐지만 북방의 실지를 회복하려는 심각한 기도는 없었으며 오히려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사대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무기력한 민족으로 타락되어 가는 과정도 목도하였다. 그리고 동학혁명 때처럼 내란이 일어나도 제 힘으로 해결 못하고 중국군을 불러 들였으며 그 결과 일본군까지 들어오게 하여 마침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마는 어리석은 광경도 목격하였다.

해방 후에는 저희들끼리 평화적으로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외세까지 끌어들여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한은 미국과 짝이 되어 동족인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과 미국이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 밀어붙이는 6자회담에서도 남한은 북한보다는 미국, 일본과 장단을 맞추고 있는 자주성 없는 처신에 대해서도 중국인들은 비웃고 있을는지 모른다.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만약 이런 것이라면 남한이 아무리 고구려사는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해도 중국은 아마도 남한은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후예라고 업신여기고 고구려사를 맘놓고 삼키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최근 정세는 우리는 과연 뻗어나가는 민족인가 아니면 위축돼 가는 민족인가를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지금 북한은 미국의 가중되는 체제전복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데 남한에는 아직도 미국의 편에 서서 북한을 몰아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건재한다. 중국과 짜고 고구려를 몰아붙이던 신라의 모습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중국이 우리를 깔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답답하다.

(2004년 8월 13일자 통일뉴스 칼럼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2 112.160.1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