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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활웅자료실] <칼럼> 한반도 기본질서의 새 틀을 짜야 한다

저자
이활웅
출처
통일뉴스
발행일
2004-06-24
<칼럼> 한반도 기본질서의 새 틀을 짜야 한다

강대국들은 사실만을 근거로 행동하지 않으며, 그들의 목적에
맞도록 사실을 만들고 그들의 의사를 약소국들에게 강요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54년 전 6.25 전쟁이 일어나 국군이 맥없이 무너질 때, 미군이 와서 북한군의 진공을 저지하고 격퇴함으로써 대한민국은 공산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오늘날까지 계속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스스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안전장치로 자처해 왔다.

한반도의 현 기본질서는 50년 묵은 군사적 정체상태에 바탕을 두고 있어

그러나 근래에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계획을 추진해온 미 국방부는 지난 5월 17일, 주한미군 3,600명을 이라크로 차출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6월 7일에는 내년 말까지 주한미군 37,500명 중 12,500명(이라크 차출 3,600명 포함)을 감축하겠다고 한국정부에 통고해 왔다.

분단과 외압의 상징이며 통일의 걸림돌인 미군이 부분적으로나마 제 발로 나가겠다는데 섭섭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자체계획에 따른 미군감축을 마치 한국의 점증하는 자주의식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인양 내 비추었다. 그래서 한국의 사대적 보수인사들은 자주보다 동맹을 택해야지 큰일 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협력적 자주국방”을 내걸었다. 또 정부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 국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일방, 미군 병력감축의 공백을 최신예무기배치로 보충토록 미국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은 국민경제의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미국 무기상들의 치부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또 남북 간의 군비경쟁과 이에 따른 긴장관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다.

한반도의 현 기본질서는 50년 묵은 군사적 정체상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기본질서를 그대로 둔 채 강구하는 모든 안보대책은 미봉책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한반도의 진정한 안전과 항구적인 평화는 현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허물고 새로운 기본질서를 구축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현 질서의 3대 축을 형성하는 남북 간 불신대결관계, 한국의 대미종속관계, 그리고 북미간 적대관계를 뜯어고쳐야 한다.

한반도 새 틀 위해 북미간 전쟁관계 매듭져야

북한의 대남 불신은 남한의 대미 종속관계 때문이지만 남한의 대북 불신과 대결의식은 북한이 6.25의 동족상잔극을 촉발시켰다는 인식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남쪽에 단독정부를 세우고 무력으로 북을 쳐서 통일해야 한다는 이승만 박사의 주장에 국민들이 동조하여 세운 나라였다. 그래서 “북진통일”은 신생 대한민국의 핵심적 정책목표였다. 그토록 먼저 북을 치려고 했던 남한이 북한이 먼저 쳤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또 설사 전쟁도발 책임이 북에게 있다 치더라도 그것은 이미 54년 전 일이다. 남한은 35년 간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며 잔학무도(殘虐無道)의 극을 다한 일본과도 해방 후 고작 20년에 수교하고 선린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물며 지금은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관계가 싹트고 자라고 있는 판국이다. 대북 불신과 대결관계의 해소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한미관계는 말이 동맹관계이지 실은 미국에 의한 지배관계이다. 이라크 파병문제만 해도 며칠 있으면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이 넘어가게 돼있으니 그 정부의 공식요청이 있으면 그때 가서 재검토하겠다고 비켜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국민이 반대하는 명분 없는 전쟁에의 파병을 강행하려다가 자국민의 참살을 초래하고 말아다.

또 핵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은 미국의 위협만 없어지면 핵무기 개발도 포기하겠다고 하는데 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핵문제가 해결돼야 본격적인 대북 협력을 하겠다고 북을 압박하고 있다. 동족간의 협력도 미국의 제약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에 의한 이런 지배관계는 북한을 미워하고 불신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치사하고 아니꼬운 관계이다. 북한과 화해하고 북한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지면 무엇 때문에 그런 굴욕을 더 참을 필요가 있겠는가? 한미관계는 피차가 할 말은 떳떳이 하고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되 들을 것은 들어주고 못들을 것은 못 들어주는 참된 선린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런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반미가 아니다.

북미간 적대관계는 6.25의 한국내전에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시작된 것이지만 미국은 휴전 후 51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북한과의 전쟁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남한에 미군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 구실을 제공해주는 북한과의 전쟁관계를 끝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 세 가지 중 마지막 축인 북미간 적대관계가 존속되는 한 한국의 대미 종속관계를 풀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한미간 주종관계가 유지되는 한 남북 간의 불신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즉 북미간의 전쟁관계를 매듭짓지 않고는 한반도 기본질서의 새 틀을 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불행하게도 남한 사람들은 극히 최근까지 주한미군이 진정 한반도평화의 수호자인지 아니면 오히려 한반도 긴장의 근본원인인지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북미간 적대관계는 한국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반도의 숙명적 조건으로 여겨왔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유지하고자하는 북미간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난 2000년 10월 12일, 북한 조명록 특사와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사이에 발표된 공동 코뮤니케는 분명 양국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함과 아울러 상호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또 오는 11월 대선에서 부시와 대결할 케리 상원의원도 5월 28일, 당선되면 북한과의 양자협상으로 핵문제를 해결 할 뿐 아리나 한반도 감군문제, 정전협정의 대체문제는 물론 남북한 통일문제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북한 뿐 아니라 남한도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면 북미적대관계도 매듭짓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방해만 없다면 남북공조 못할 까닭 없어

지금 한국의 소위 “국방”이란 동족인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인구, 경제력, 군사력, 국제지위의 모든 면에서 남한보다 월등히 열세에 있다. 그들은 남한과의 민족공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의 방해만 없다면 남북공조를 못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남북공조가 되면 북을 대상으로 하는 “국방”이란 무의미한 개념이 된다. 북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상태를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안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변제국과의 안보문제만 남는데 그것은 별도의 지역안보체제를 통해 풀도록 하면 될 것이다.

한반도의 새로운 기본질서의 대원칙은 7.4 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으로 이미 밝혀져 있다. 다만 그 실천이 휴전협정과 한미방위조약의 존재로 말미암아 제지당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모순을 타파하고 남북이 공존공영하며 평화통일을 이루어 가는 새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너나없이 모두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2004년 6월 24일자 통일뉴스  칼럼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2 112.160.1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