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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자료실] <칼럼> 일제 식민지시대와 오늘의 한미동맹시대는 ‘一而二, 二而一’의 관계이다

저자
김남식
출처
통일뉴스
발행일
2004-08-31
<칼럼> 일제 식민지시대와 오늘의 한미동맹시대는 ‘一而二, 二而一’의 관계이다

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먼저, ‘一而二, 二而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용어는 조선시대 중엽 주자 성리학자들 간에 이기(理氣)논쟁이 활발히 전개된 상황 하에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자의 대표적 학자인 율곡 이이(李珥)의 학설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이이는 이와 기와의 관계를 하나면서도 둘, 둘이면서도 하나, 그리고 이기(理氣)는 서로 합칠 수도 없고 또한 떨어질 수도 없는 ‘불상잡 불상리’(不相雜 不相離) 관계라고 설명을 했다.

일제시대와 한미동맹시대는 뗄 수 없는 관계

이러한 관계를 원용해서 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와 해방 후 남한에서 3년간의 미 군정을 통한 한미동맹시대의 관계와 비유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一而二’와 ‘二而一’에서 ‘一’은 자주권 침탈을, ‘二’는 그 자주권 침탈을 위한 모양새로서 상부구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시대와 해방 후 한미동맹시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결된 선상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시대의 진상규명만으로는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잡고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목표가 달성되기 미흡하다고 본다. 게다가 반민족행위자의 재산몰수와 같은 청산이 수반되지 않는 진상규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오늘날 민족정체성과 민족정기 문제가 훼손된 것이 일제 강점시기의 식민지 진상규명과 청산이 안됐기 때문이라는 것으로만 보려는 시각이다. 실은 반세기 이상에 걸친 한미동맹시대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 문제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느 면에서는 여기에 보다 관심을 돌려야 하는 문제라고 봐야 한다. 특히 이는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 군정은 일제 청산없이 친미적 단독정부 수립한 과정

이미 다 알다시피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과 더불어 정한론(征韓論)에 입각하여 조선침략을 꾸준히 전개해 왔으며, 20세기 초엽 일본은 미국과 공모해서 또한 영국과도 공모해서 조선강점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강점과 식민지 통치의 둘도 없는 주된 공모자인 것이다.

일제 패망 후 남한지역에 진주한 미군은 즉시 군정을 실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 강점기의 모든 것을 부활시켜 군정을 실시한 것이다. 총독 중심의 정치를 대신하여 미 군정 중심의 통치로 바뀌어진 것일 뿐이며, 통치구조에서 일본인만 제외시킨 모양새였다.

다시 말해서 일제 식민지 통치의 모든 요소를 아무런 청산없이 그대로 계승한 꼴이 된 것이다. 즉 미 군정은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기용은 물론 행정기구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경찰, 사법기관 등 인적 요소도 포함하여 일제 시기의 그것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미 군정은 1948년 5.10선거를 통해 단독정부인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친미정권을 수립하고 미군정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요컨대 3년간의 미 군정은 일제 식민지 통치에 대한 아무런 청산없이 그를 계승하면서 그를 기반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토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8.15해방 후 모든 민중들은 일제의 기반에서 벗어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모든 고초를 극복하면서 살아왔는데 막상 해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장악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일제 식민지 시대와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항쟁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바로 ‘대구인민항쟁’, ‘제주도 4.3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반민특위라는 특별기구를 만들어 친일반역자에 대한 청산을 시도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수가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일제 잔재 청산이 얼마나 안되었나 라는 것은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상당한 면적의 일본인 명의의 토지와 산림이 아직도 등기부에 등재돼 있다는 것이다. ‘국민학교’라는 일제시대 때 명칭이 최근년간에 ‘초등학교’로 바뀐 것이다. 을사5적의 후손 송병준과 같은 매국노의 후손들이 조상들의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낸 바도 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3년간의 미 군정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통치를 청산없이 그대로 부활시켜 그를 기반으로 친미적인 단독정부를 수립한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 정전 후 한미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새로운 한미동맹관계 시대로 나아간 것이다.

민족자주권 해결없이 민족정기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

한미동맹 관계는 군사적 동맹체제를 기반으로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면으로 반세기 이상 심화발전의 길을 걸어 왔다고 볼 수가 있다. 한미동맹관계를 상호호혜와 평등의 관계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평등과 불평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불평등관계라고 본다. 자주와 종속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때 자주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종속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미동맹관계가 불평등 또는 종속관계라고 할 때 이는 종래의 식민지 시대와는 다른 신식민지 시대의 산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신식민주의 시대는 구식민주의 시대와는 달리 총독정치와 같은 직접적인 통치가 아니라 형식상 그 나라 국민의 대표로서의 대리정권을 통해 간접통치를 하기 마련이다. 만약 그 대리정권이 신식민주의 종주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할 때는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그 대리정권을 교체시키기도 한다. 흔히 우리는 중남미의 경우에서 이러한 예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미동맹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와 직결되는 문제로서 이 문제 해결없이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몇 가지를 짚어보기로 하자.

한미동맹 관계에서 핵심은 군사동맹문제이다. 한미군사동맹 측면에서 볼 때 한미연합사를 통한 미국의 군사지배로 인해 우리의 군사 자주권을 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에 참여정부가 ‘협력적 자주국방’을 주장하고 있으나 전시작전권이 없는 상황에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군사통수권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가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며 또한 증권시장과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주도의 자본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이익과 관련된 분야에 대한 자주외교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정치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친일행위가 민족반역 행위이듯 친미행위 역시 ‘민족반역’ 행위

가장 중요한 문제인 민족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한국정부는 한미공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6.15공동선언은 남북이 합의한 통일의 이정표인데 그를 실천함에 있어서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과 사전 조율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자주적인 입장인 것이다.

예컨대 개성공단의 경우만 봐도 그러하다. 개성공단 조성사업이 그처럼 시간을 끄는 것은 바로 미국의 방해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조차도 주체적이며 자주적인 입장에서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운운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한미동맹시대의 한미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보다도 미국의 이해관계가 우선순위로 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에 대한 진상조사 및 평가와 더불어 한미동맹시대인 오늘의 한미관계에 있어서의 민족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는 문제가 제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된다고 본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시대에서 일본 침략자들의 이익을 위한 친일행위가 민족반역 행위라면 오늘의 한미동맹시대에서 미국의 국익만을 위한 친미행위 역시 ‘민족반역’ 행위로 되는 것이다.

예컨대 부시 미 행정부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한국군의 참전 또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동조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테러지원국, 핵선제공격 대상으로의 규정과 군사적 압살정책, 북을 적대시하는 각종 군사훈련 등에 끌려가는 것 역시 민족의 주체적인 입장에 볼 때 민족반역 행위로 보아도 반론의 여지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친일진상 규명과 함께 한미동맹시대인 대미 불평등과 종속에서 벗어나는 투쟁이 동시에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이 민족정체성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한미동맹시대의 비자주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평등한 상호호혜 관계로 나가기 위해 민족의 자주권 확보문제가 더욱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모두(冒頭)에 언급한 것과 같이 이기론(理氣論)의 대표적 학자인 율곡 이이의 ‘一而二, 二而一’ 문제는 바로 일제 강점기 식민지시대와 해방후 한미동맹시대와 연결시켜 볼 때 무리 없이 원용할 수 있는 용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는 일제 식민지 통치시대와 그후의 한미동맹시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6.15공동선언 실천에 있어서 남북한 온 민족이 단합하여 ‘남북이 공조하여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우리 민족사의 근현대사를 통해 볼 때 우리민족은 외세와의 대립투쟁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6.15공동선언을 통한 민족문제 해결 역시 우리민족과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의 관계가 ‘민족 대 외세’, ‘민족 대 반민족 세력’, ‘민족자주와 외세종속’, ‘통일과 반통일’이라는 구도로 전개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이 시점에서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보다 광범한 각계각층의 연대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통일대열에 참여시켜야 할 때이다. 이러한 연대를 위해서는 과거를 묻지 말아야 한다. 비록 과거에 민족 앞에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를 뉘우치고 오늘의 민족문제 해결에 ‘민족자주권’ 확보를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선다면 일시적인 동반자가 아니라 영원한 동반자로 함께 가야 한다.

좌우경적인 과오 범하지 말아야

끝으로, 오늘날 정치권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한 활동, 예컨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과 같은 것을 법률로 채택하여 그를 실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민족사 발전에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며 환영할만한 일이다. 역사학자들은 민족사가 우여곡절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간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것을 두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오랫동안 근현대사 연구와 민족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 권고하고 싶은 것은, 특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을 통한 과거사 규명은 사람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조사와 함께 그들의 후손의 앞날을 위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좌우경적인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지난날의 경험을 보아 그러하듯이 진상규명은 자칫하면 우경보다도 좌경적인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이런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의 한미동맹시대의 자주권 확보를 위한 투쟁은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되살려내는 데 화급한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일제 강점기 친일행위가 반민족 행위라면 오늘의 한미동맹시대에서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친미행위 역시 반민족행위라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2004년 8월 31일자 통일뉴스 칼럼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0 112.160.1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