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료실

제목

[김남식자료실] <특별기고> 북한의 ‘영생 10년’의 이해를 위하여 - 노동신문, 정론 ‘피눈물의 맹세 영원히 잊지 말자’와 관련해서

저자
김남식
출처
통일뉴스
발행일
2004-07-09
<특별기고> 북한의 ‘영생 10년’의 이해를 위하여 
-노동신문, 정론 ‘피눈물의 맹세 영원히 잊지 말자’와 관련해서


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김일성 주석 10주기를 앞두고 북한의 노동신문은 7월5일 ‘피눈물의 맹세 영원히 잊지 말자’는 장문의 ‘정론’을 발표했다. 이는 5년 전인 1999년 7월9일 5주기와 관련 ‘수령영생을 위한 성스러운 5년’이라는 중앙방송 ‘정론’에 이은 계속되는 글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번에 발표된 '정론' ‘피눈물의 맹세 영원히 잊지 말자’는 5년 전의 '정론'과 이어지는 ‘영생 10년’이라는 것으로 그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생 10년’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김일성 주석의 ‘영생 10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김일성 주석의‘ 영생’에 관한 문제이다.

김일성 주석의 ‘영생’문제와 북한 인민의 ‘생명관’

1995년 1주기를 앞두고 6월12일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 등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의 공동 명의로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칭하는 결정서를 채택했는데 이때의 결정서 명의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영생의 모습으로 길이 모실 데 대하여’로 되어 있었다.

이는 중국의 모택동 주석, 월남의 호지명 주석과 같이 김일성 주석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길이 모신다는 것으로서 ‘김일성 수령은 영원한 수령, 영원히 우리와 함께’라는 ‘영생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1997년 7월 3주기를 즈음하여 김일성 주석 출생 해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 년호를 사용토록 하고 탄생일인 4월15일을 ‘태양절’로 정했다. 그리고 탑신이 82미터(82세 상징)가 되는 영생탑을 건립했다. 또한 1998년 9월에 새로 개정한 사회주의 헌법을 ‘김일성 헌법’으로 또한 동 헌법에서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한다는 것을 규정했다.

이러한 모든 조치들은 북한 인민이 한결같이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수령,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고 또한 ‘김일성 수령은 항상 우리와 같이 하고 있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에 의해 개척하고 발전시킨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하면서 그를 창조적으로 완성시켜 나간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영생에 관한 문제는 그를 뒷받침하는 북한 인민의 ‘생명관’과 관련이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김일성 주석에 의해 인민들의 생명관에 관해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이라는 두 가지 생명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인간 집단인 사회가 존속하는 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관에 기초하여 북한 인민들은 유한한 육체적 생명보다도 영원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중요시하며 그를 위해 자기의 모든 정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인민은 김일성 주석에 대한 영생문제는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주체혁명위업을 위한 모든 활동이 김일성 수령의 영생위업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수령의 영생문제

여기서 강조해야 할 점은 수령의 영생문제이다. 수령의 영생문제는 인민대중이 사회정치적 생명의 영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주체의 혁명 위업을 수행해 나감에 있어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흔히 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인민대중은 계급사회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참된 주체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창조에서 지배계급의 의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민대중은 계급사회에서는 주체적 역할에 있어서 지배계급이라는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는 인민대중은 처음부터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민대중이라는 주체는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받을 때만이 참된 자주적 주체가 된다는 논리이다.

북한의 수령론에서는 주체의 혁명위업은 수령의 혁명위업이며 수령은 혁명사상을 창조하고 주체 혁명의 모든 과정에서 인민들의 요구와 의사를 총화.분석하여 그를 기초로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혁명과 건설을 영도해 나가기 때문에 수령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수령, 당, 인민대중이라는 3위1체를 주체혁명의 자주적 주체세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정론’에서는 “수령의 영생에 민족의 운명,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하면서 “수령은 혁명의 뇌수이고 혼연일체의 중심이며 민족의 심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구 소련, 동구라파 사회주의 나라들, 유고와 중국의 경우 수령을 잃게 되자 사상적 혼란은 물론 지도부의 분열, 심지어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되면서 인민대중이 갖은 치욕과 굴욕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북한의 입장에서는 수령이 영생해야 만이 민족이 영생하고 혁명이 영생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생 10년은 총대로 지킨 선군영생”

이번 ‘정론’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수령의 ‘영생 10년’이 다름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선군사상과 선군정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에 의해 수령 영생이 수호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론’에서는 “수령님의 영생 10년은 총대로 지키고 빛내여 온 선군영생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군정치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란 본질에 있어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며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우고 그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을 말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원래 정치철학이라고 할 때 그것은 정치의 좌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새롭게 제창한 철학은 “군대는 곧 당이다, 군대는 곧 국가이다, 군대가 곧 민중이다”라는 총대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방식에 의해 수령의 영생 10년을 지킬 수 있었고 앞으로 계속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령의 영생 10년, 영생 백년, 영생 천년은 바로 선군영생 10년, 백년, 천년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의 대장정’의 길을 걷게 된 시발점은 1995년 1월1일 인민군 ‘다박솔 중대’를 방문한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날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박솔 중대를 방문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서 김일성 주석에게 가장 충실하고 김일성 수령의 주체혁명 위업을 드팀없이 계승.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혁명의 영도자로서 뭔가 새로운 획기적이며 원대한 구상과 방법론을 찾기 위한 것이었음이 분명한 것이다.

즉 1월1일 모든 신년행사를 제쳐놓고 다박솔 중대를 방문한 것은 이미 결심한 바 있는 군에 의거한 정치방식을 구상했음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정론’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박솔 언덕을 내려 백만장정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그리고 “선군은 영생이고 영생은 선군이며 혁명의 총대우(위)에 당도 국가도 조국도 있으며 수령의 영생도 있다”면서 “붓대와 마치(망치)만 가지고서는 수령의 영생을 수호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치라는 것은 노동계급을 의미하며 붓대는 지식인과 사무원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다.

1995년 1월1일 선군시대의 막이 오른 때부터 2002년 2월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천3백 개의 단위를 시찰하였는데 그 가운데 8백14회는 군부대 시찰로 되어 있다. 거리로서는 1996년에 2만5천리, 1997년에 3만리, 1998년에 4만리가 된다는 것이다. 1211고지, 오성산 대덕산 고지는 물론이며 동부 최전방인 351고지를 비롯해서 서해의 외딴 섬 그리고 판문점까지 거의 인민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안가본 데가 없으며 이를 ‘선군의 백만장정의 길’이라고 하기도 한다.

선군정치라고 할 때 이는 필연적으로 국방력 강화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자위력 강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자주적인 국방공업에 의거하여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선군정치는 군을 주력군으로 하여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돌파구를 개척해 나가는 것으로서 임남댐(금강산댐) 등 발전소 건설과 농촌에서의 정지작업 그리고 지난 4월 룡천폭발 사고에 의한 복구건설 등 중요한 건설현장에는 어김없이 군이 투입되고 있으며 그들이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늘의 북한사회는 이처럼 선군에 의해서 ‘영생 10년’이 수호되며 수령의 영생과 선군의 영생이 하나의 불가분리적 결합체로서 계속 이어져 나가면서 계승과 창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수령의 영생은 단결의 영생”

그리고 ‘정론’에서는 “수령의 영생은 단결의 영생”임을 강조하고 “선군이 수령 영생의 무기라면 단결은 수령 영생의 존재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총대와 단결은 수령 영생의 2대 비결”이라는 것이다.

1994년 7월 ‘대국상’을 당할 때 당시 북한이 보도된 언론매체들의 내용을 볼 때 북한의 온 인민은 ‘피눈물로 맹세’를 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피눈물의 맹세’는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대단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이룩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북한 인민은 더욱 더 김일성 주석과 가까워졌으며 수령과의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이때의 ‘피눈물 맹세’가 그후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미증유의 곤경을 극복할 수 있게 했으며 견디기 힘든 역경 속에서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혁명적 낙관주의가 당시 사회를 지배했다고 볼 수가 있다.

‘정론’에서 나타난 일심단결에서 가장 강조되는 점은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사회주의라는 집단주의체제 하에서 수령의 영도가 주체혁명 수행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모든 인민이 수령의 영도를 받을 때만이 자주적 주체가 된다는 논리로부터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생 10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도덕 수범의 10년

또한 ‘정론’에서는 ‘영생 10년’을 영도해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결한 도덕적 풍모와 의리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영생 10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도덕 수범의 10년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수령에 대해 생전보다도 더욱 거룩하게 흠모하고 그리워하면서 수령의 혁명사상과 업적을 천배 만배로 빛을 뿌리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북한에서의 ‘대국상’을 치른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김일성 수령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세계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으며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양심과 본색을 총체적으로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은 그간의 국제사회에서 전개된 이러저러한 부도덕하고 불미스러운 현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었다. 예컨대 사회주의권의 경우만 보더라도 구 소련에서는 스탈린 사망 후 권력투쟁과 수정주의로의 변신, 중국의 모택동 사망 전후 4인방을 둘러싼 권력투쟁과 모택동에 대한 재평가, 유고의 티토 사망 후의 정치적 혼란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오래 전에 후계자로서의 김일성 주석을 받들어 온 것으로 하여 수령의 영생 문제에 대해 예측한 바는 있으나, 그처럼 철저하게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수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라는 구호대로 김일성 수령과 인민을 하나의 생명체로 결속시켜 주체혁명위업을 ‘수령식대로’ 이끌어 왔다고 볼 수가 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 국가들의 지도자들, 국제사회에서의 일부 반사회주의 우파 학자와 인사들, 그리고 남한의 정치권과 반북우파 학자들까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체제가 아무리 잘 꾸려졌다하더라도 북한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주장들이 지배적이었으며 또는 개혁.개방을 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 물결에 흡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는 주장들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무지를 스스로 드러낸 헛소리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 심지어 북미간에 합의된 기본합의서에 따라 북한지역에서 경수로 건설을 하게 되었는데 미국측은 약속대로 공사를 진행시키지 않고 지연시킨 바 있는데 이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의식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2001년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스크바를 방문했는데 이는 1986년 10월 당시 김일성 주석이 소련을 방문한 바 있어 그후 15년만에 방소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간 소원했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로운 우호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스크바 방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레닌의 묘에 헌화를 했는데 이러한 김 위원장의 레닌 묘 참배에 대해 러시아는 물론 세계의 지도자들, 언론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내심 김 위원장에 대한 고상한 도덕적 의리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컨대 ‘영생 10년’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김일성 수령에 대한 효심과 더불어 충실성 그리고 도덕적 의리가 비상히 높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검증된 셈이다.

“영생의 10년은 전승의 10년”

끝으로, ‘정론’에서는 “영생의 10년으로 우리는 천만년을 얻었다”고 하면서 “영생의 10년은 전승의 10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95년 정월 다박솔 언덕에서 시작된 선군정치는 한편으로는 김일성 수령의 영생을 지켰으며 주체혁명위업의 계승과 창조의 길을 걸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총성없는 전쟁, 예컨대 핵문제와 관련 미국과의 대결 그리고 구 소련과 사회주의 붕괴로 인한 우방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부적 압력과 맞부딪쳐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에 의한 경제적 봉쇄정책을 극복해야만 했고 일찍이 역사에서 없었던 ‘고난의 행군’을 강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상황하에서도 북한 인민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모든 고난들을 극복하고 강성대국 건설의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론’의 주장대로 “영생의 10년은 전승의 10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전승의 10년’이라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개척한 선군정치로 이루어진 것이며 따라서 김일성 수령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는 조건에서 선군정치는 이와 연결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영생과 선군은 하나의 결합체로서 계속 이어져 나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수령의 영생은 선군의 영생”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도하는 선군의 영생은 바로 수령의 영생”인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처럼 김일성 주석 10주기에 즈음하여 발표된 노동신문의 ‘정론’ ‘피눈물의 맹세 영원히 잊지 말자’는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이 ‘정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한에서 주장하고 있는 ‘수령 영생론’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주체혁명위업 수행에서 인민대중은 수령에 영도를 제대로 받을 때만이 참된 자주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는 집단주의 사회이며 개인주의 사회와 같이 인민들 간의 적대관계와 갈등관계가 아니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사회적 관계인 것이다.

북한 인민에게 ‘영생 10년’은 자연스러운 용어

그러므로 이러한 동지적 협조적인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그를 총체적으로 영도하는 중심이 있어야 하며 그 중심은 다름아닌 탁월한 수령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수령은 인민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뇌수의 역할을 하는 중심이며 수령의 기능은 외적 기능이 아니라 인민대중이라는 전체속의 내적 기능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로부터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은 대를 이어 계승해 나가면서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김일성 주석이 창조한 혁명사상과 그에 의해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계승.완성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 수령은 영원한 수령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영생 10년, 백년, 천년’이라는 것도 여기에 근거해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고 북한 인민들의 정서에서 볼 때 ‘영생 10년’은 낯선 용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용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작성일:2020-10-13 10:09:30 112.160.1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