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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자료실] 북한의 핵문제와 불가침조약

저자
김남식
출처
범민련 서울본부, 범민련 후원회
발행일
2003-03-08


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1. 머리말


오늘날 북미간에 전개되고 있는 핵과 관련된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세계적 범위에서의 군사적 패권주의 실현을 위한 하나의 고리로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시켜야만 하는 정책에서 나오게된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은 결국에는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방해하며 나아가서 남북한 민족의 대단결을 못하도록 하고,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는 물론 남한에 대한 그들의 지배영역을 북한지역에까지 확장하려는 이른바 `개입과 억지`라는 정책의 발로로 볼 수가 있다.

6.15 공동선언 후 남북한 우리 민족은 민족사적 과제인 통일을 실현코자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데 이러한 우리의 발걸음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인해 장애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충돌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는 한결같이 남북이 하나되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그를 저지시키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해결방도로서 북한이 제시한 북미불가침조약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성을 띤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북미기본합의서는 사실상 파기 상태다


(1) 북미기본합의서란

북미기본합의서란 1994년 10월21일 클린턴 대통령의 담보서한에 기초하여 북미간에 합의한 조약에 준하는 국가간의 약속으로서 그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이 개발과 건설을 하고 있는 흑연 감속로 발전소(준공을 앞둔)와 핵관련 시설들을 봉인하여 가동과 작업을 중단케 하고 그 대신 200만 킬로와트(100만 킬로와트 2기)의 경수로에 의한 핵발전소를 유상으로 건설해 주고 또한 경수로 건설 완공까지 매년 중유 50만톤을 제공하는 것. 그리하여 종국적으로는 북한의 모든 핵시설을 해체한다는 것. 둘째, 북미간에 관계개선과 경제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며 조속한 시일내에 정상화를 도모하는 것 등이다. 그밖에 한반도의 비핵화지대 및 국제적 핵비확산체제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미기본합의서는 1년전인 1993년 6월11일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성명, 즉  북한의 NPT 탈퇴를 잠시 보류시키는 것과 함께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자주권 존중, 내정불간섭 그리고 평화적 통일 지지, 북한과의 대화 계속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공동성명의 연장선에서 북미간에 합의한 문서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측은 기본합의서에 대해 조약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의회 승인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약 대신 합의서 형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서는 당시 대통령인 클린턴이 직접 서명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으로 보낸 담보서한에 기초하여 만들어져서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의회승인이라는 절차만 생략됐을 뿐 조약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누가 지키지 않았는가

최근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를 클로즈업시키면서 북한에 대해 북미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고 핵개발을 추진함으로서 기본합의서를 사실상 파기하기에 이르렀다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우리도 기본합의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북미기본합의서 실질적 파기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게 들씌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미기본합의서에 따라 매년 제공하기로 되어있는 중유를 지난해 12월부터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2003년도 예산에서는 이를 삭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주장은 적반하장 격인 것으로서 북미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것은 다름아닌 미국 자신인 것이다. 경수로 건설의 경우만 봐도 그러하다. 기본합의서에는 2003년에 완성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며 양해각서에서는 2002년에 100만 킬로와트의 1호기가 완공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로 인한 북한의 전력손실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간 북한이 경수로 발전소 건설 지연에 따르는 전력손실 보장문제에 대해 수차에 걸쳐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당연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면서 심지어 남쪽에서의 전력지원 의사에 대해서까지 반대하고 제동을 걸었다.

이처럼 미국이 경수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또한 50만톤 중유제공을 중단함으로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사실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미국으로 인해 KEDO의 존폐문제가 현실화되고 결국은 해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미기본합의서에서 밝히고 있는 북미간의 관계개선과 경제협력, 나아가서 국교정상화 문제에 있어서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합의서 이전의 상태인 적대관계로 되돌아갔으며,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은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도 강도 높게 전개되고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이라 하면서 테러전의 대상국으로 삼았고 계속해서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으며, 심지어 핵선제공격 대상국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는 기본합의서가 잘못된 합의서라는 것으로 규정하고 그를 일방적으로 무효화시키는 입장이며  체계적으로 파기하는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3) 기본합의서에 대한 북미간의 현재 입장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미기본합의서에 대해 대통령 당선 전부터 이른바 `잘못된 합의서`라는 것으로 클린턴 행정부를 비판했다. 그 이유는 기본합의서가 핵시설을 그대로 두고 합의함으로서 북한의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집권 후에는 기본합의서를 자기들이 먼저 공식적으로 무효화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기본합의서 이행 개선`이라는 것을 대북정책의 하나로 설정하였다. `이행 개선`이라는 것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먼저 전면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부시 행정부의 주장은 북미간의 약속과 어긋나는 것이다. 북미간의 기본합의서 비공개 양해각서에서는 경수로의 상당 부분이 완성되었을 때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추가적인 장소와 정보에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에 부시 행정부에서는 북미기본합의서에 대한 공식적인 파기선언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파기선언과 다름없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관해 올해 1월14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의하면, 파월 국무장관은 제네바 합의가 "핵분열 물질의 생산을 봉쇄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생산능력은 고스란히 남겨뒀다"며 "이제는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며, 기존의 합의 틀로 되돌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경우 그간 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것은 미국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은 합의서 내용대로 성실히 지켜왔음을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북미기본합의서는 북미간에 합의한 쌍무적 계약이므로 `동시 행동(이행)`의 원칙을 강조해 왔다.

즉, 미국이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북한은 그에 해당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간 부시 행정부가 줄곧 기본합의서를 무효화시키는 정책을 추구해 왔음에 비해 북한은 기본합의서 틀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성 있게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북한에서 취한 IAEA 사찰에서 벗어나고 흑연 감속로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재가동하려는 조치는 북미기본합의서를 파기한다는 것으로 볼 수가 없으며 기본합의서 `동시 행동`의 원칙에서 비롯된 조치로 봐야 할 것이다.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3. 북한의 핵문제가 왜 부각되었는가


본래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핵개발 의혹을 갖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증거 확보에 노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야만이 북한의 핵의혹을 사실화시켜 북미기본합의서를 북한이 위반했다는 것으로 들씌워 합의서를 무효화시킬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예컨대 테러지원국, `악의 축`, 핵선제공격 대상국 등이 합리화되며 북미기본합의서에 의한 미국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나아가서 남한의 대북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에 제동을 걸고 북일수교회담을 못하도록 여건조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부시 행정부의 세계적 범위에서의 군사적 패권주의와 동북아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주둔명분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켈리는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해당 관리들과의 회담에서 고압적 자세와 오만한 태도로 이른바 농축 우라늄을 채취할 수 있는 시설과 기자재를 도입했다는 이른바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증거란 매우 불확실한 것으로서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것이 되지 못하며 정보 차원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리 특사는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으며 이러한 켈리 특사의 비상식적이고 위압적이며 무례한 협상태도에 대해 북한의 해당 관리는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이 강화되는 조건에서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가지게 되었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의 자위적 권리와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켈리는 이러한 발언을 근거삼아 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기정사실화하여 그를 클로즈업시킨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하고 있는 건지 또는 그러한 프로그램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북미기본합의서를 위반하고 농축 우라늄의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그 책임을 북한에 들씌운 것이다.

이처럼 켈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핵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마치 북한이 기본합의서에 의해 플루토늄 방식의 핵개발이 봉쇄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인 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개발을 추진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여 세계의 여론을 오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북한이 북미기본합의서를 위반하면서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잘못 알려진 것이다.

켈리 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핵문제가 크게 부각이 되자 북한은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난해 10월25일 불가침조약 체결을 미국에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후술)


4. 북한의 NPT 탈퇴


NPT(핵확산금지조약)는 핵무기확산방지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1970년 3월5일에 발효된 국제조약이다. 지난해 2월 현재 187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며, 이 조약에 가입하게 되면 가입후 18개월 이내에 조약 3조의 규정에 따라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을 포기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안전조처협정을 맺고 사찰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NPT는 핵보유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은 IAEA 감시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따라서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고 불공평한 조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핵보유국으로 알려져 있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은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NPT 체제는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의한 일극적 지배체제 확립에 유리한 조약인 것이다. 미국은 핵보유국이 확산되면, 핵무기라는 억지력 때문에 자기의 뜻대로 군사적 지배전략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NPT 체제의 유지가 세계지배전략의 기초적 여건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1985년에 NPT에 가입하고 1992년 1월30일에 IAEA와 안전조처협정을 맺고, 4월에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절차를 밟았으며 6월부터 IAEA 핵사찰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섯 차례의 임시사찰을 진행했으며 IAEA는 사찰 과정에서 북측이 제출한 보고서가 `중대한 모순`이 있다고 하면서 NPT에 가입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93년 2월 이사회에서 미신고 두 개 지역에 대한 시한부 특별사찰 결의를 채택했다. 이러한 결의는 전례가 없는 일로서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며 불평등한 조치였다.

이러한 결의에 대해 북한은 불공평한 결의라 하면서 3월12일 NPT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사태가 이와 같이 발전하게 되자 북미간에는 미측 제의에 의해 참사관급 회담을 북경에서 열고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합의에 기초하여 93년 6월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어 6월11일 5개항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NPT 탈퇴를 잠정유보한다는데 미국과 합의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까지 NPT 체제의 정식 회원국도 아니며 그렇다고 비회원국도 아닌 `특수 지위`로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문제가 부각되자 IAEA는 미국 조정하에 지난해 11월29일과 올해 1월6일에는 북한에 대한 `핵 프로그램의 해명 촉구와 포기`를 결의하면서 북에 대한 압박을 가했다.

이처럼 미국 조정하의 IAEA가 불공정한 결의안을 채택하게 되자 북한은 지난 1월10일 정부성명을 통해 NPT 탈퇴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탈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정부성명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동(同)성명은 IAEA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요구를 북한측에 강요했다고 하면서 "미국의 조종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는 결의들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산물인 핵문제의 본질과 핵무기전파방지조약(핵확산금지조약) 탈퇴효력 발생을 임시 정지시킨 우리의 특수 지위를 무시하고 우리를 죄인 취급하면서 그 무슨 핵계획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즉시 포기하라고 강박하였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동(同)성명은 "이러한 미국이 이제는 국제원자력기구까지 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압살책동을 국제화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는 실제 행동에 옮겨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로써 조선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 마저 끝끝내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우리 국가의 최고 이익이 극도로 위협당하고 있는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첫째 미국이 1993년 6월 11일부 조.미 공동성명에 따라 핵위협 중지와 적대의사 포기를 공약한 의무를 일방적으로 포기한 조건에서 공화국 정부는 같은 성명에 따라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만큼 일방적으로 임시 정지`시켜 놓았던 핵무기전파방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의 효력이 자동적으로 즉시 발생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둘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함에 따라 조약 제3조에 따르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서 NPT 회원국으로서 반드시 받아야 할 IAEA 사찰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경유 제공 중단 등 기본합의서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흑연 감속로에 의한 핵발전소 재가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포하고 이어서 미국의 조정하에 IAEA의 부당한 결의가 있게 되자 NPT를 탈퇴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태가 이처럼 북한의 NPT 탈퇴라는 데까지 발전하게 되자 미국은 물론 러시아, 중국, 일본, 남한 등과 IAEA 등 국제기구에서는 북한의 NPT 탈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즉시 복귀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었다.


5. IAEA 특별이사회 결의와 유엔 안보리 상정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동력 개발이 예상되자 미국의 조종하에 있는 IAEA는 지난 2월12일 특별이사회를 개최하고 네 가지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 내용은 북한의 핵물질이 핵무기로 전용되는지 여부에 대해 검증할 수가 없다는 것, 따라서 IAEA와 맺은 안전조치협정이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며 이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IAEA 특별이사회 결의에 대해 북한은 IAEA는 `기구 성원국도 아니고 NPT에서도 이미 탈퇴한 우리 문제를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할 그 어떠한 권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라고 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핵활동에 억지로 다른 성격을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핵활동이 현 시점에서 전력생산과 평화적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이처럼 북한의 핵문제는 IAEA의 결의에 따라 유엔 안보리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6. 불가침조약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은 미국이 주장하는 핵문제와 관련하여 그 해결방식으로서 지난해 10월 25일 북미간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의 이러한 불가침조약 제의는 그간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과 관련시켜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첫째, 북미관계는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후 전쟁이 아니라 휴전상태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휴전협정에는 휴전을 담보하고 또한 휴전선을 관리하는 정전위원회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서 그 어느 하나도 지켜진 바 없으며 정전위원회의 기능이 상실된지 10년이 넘었으며 사실상 휴전체제는 남북간의 군사적 `힘의 균형`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북한은 그간 미국측에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 체결 또한 평화보장체제 확립, 그리고 3자회담 등을 제의한 바 있으며 한미 공동으로 제안한 4자회담도 수용한 바 있다.      

한편 실질적인 휴전선 관리장치로서 96년 2월에 북미간의 잠정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공동군사기구를 설치하여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신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된 정전협정을 고집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북한은 미국에 장성급회담을 제의하게 되었고 98년 6월 장성급회담이 개최되게 되었다. 이 장성급회담에 대해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97년 8월5일 중앙통신과의 회견에서 `지금의 조선에서 조미 군부 장령급회담을 우선 개최하며 정전기구를 대신하는 구속력 있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로 나선다`라고 장성급회담의 성격을 밝힌 바 있다.

99년 6월 서해사건 또한 금년 6월 서해사건과 관련해 장성급회담이 개최된 바 있다. 이처럼 장성급회담은 휴전선상에서 벌어지는 군사문제에 대해 파괴된 정전위원회를 대신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휴전체제가 북한과 중국, 유엔사(한국군 포함)라는 관계가 아니라 북미간의 군사문제로서 관리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북한이 제의한 북미간의 불가침조약 체결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즉 정전위원회가 휴전협정을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자기 기능을 원만히 수행할 때에는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을 또한 정전체제를 대신하는 평화보장체제라는 것으로 연결이 되지마는, 정전협정이 사문화되고 정전협정을 실질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정전위원회가 파기된 상태에서 종래의 평화협정보다는 북미간의 불가침조약으로 성격전환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91년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남북간에는 불가침선언을 이미 선포한바 있고 따라서 지금의 휴전선은 자연스럽게 남북간의 계선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돼야 할 점은 북미간의 불가침조약이 6.15공동선언 실천을 통한 우리 민족의 대단결과 극히 일부 층을 제외하고는 남북한 민족 대 외세(미국)라는 모순구조가 분명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뒷받침이 되었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둘째, 이미 북한은 켈리 특사단에게 미국이, 첫째 자주권 인정, 둘째 불가침 확약, 셋째 경제발전에 장애조성을 하지 말 것 등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켈리가 주장하는 핵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이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 프로그램 포기와 투명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미국의 선 무장해제론에 대해 북한은 다음과 같은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논리이다. 우리가 벌거벗고 무엇을 가지고 대항한단 말인가. 결국 우리보고 굴복하라는 것이다. 굴복은 죽음이다. 죽음을 각오한 자 당할 자 없다. 이것이 선군정치를 끝까지 받들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신념이며 의지이다. 우리의 입장은 시종 일관하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북미불가침조약은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안보상 문제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입장은 북미간 문제해결의 기본적인 기준은 북한에 대한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자주권과 생존권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방법, 즉 협상의 방법과 억지력의 방법 등이 있는데 될수록 협상의 방법을 바란다는 입장인 것이다.

불가침조약 본질에 대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월21일 "어떻게하나 조ㆍ미 기본합의문이 깨어지는 것만은 막기 위하여 지난 10월 25일에만 해도 미국에 불가침조약 체결을 핵문제 해결의 담보로 제안했다. 우리의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의 본질은 미국의 위협이 초래한 문제들을 그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것으로서 이 제안이야말로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에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도이다"라고 북미관계 발전을 규정하고 있는 기본합의서만큼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표명을 했다.

불가침조약에 대한 북한의 해석은 `나라들 사이에 서로 영토와 자주권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거나 침략하지 않으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확인하는 조약`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처럼 불가침조약은 상대방에 대한 내정간섭을 배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은 남쪽에 있는 주한미군에 대한 철수를 주장하거나 또는 그를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이외의 모든 상용 무력수단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미국은 불가침조약 체결로 인한 주한미군철수 문제라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불가침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그후 수차에 걸쳐 되풀이 주장했으며 지난 2월1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는 부시 행정부가 당파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임 행정부가 맺은 쌍무적 합의는 물론 국제조약도 주저없이 줴버리는 불량배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고 확신하게 됐다"며 "이런 부시 행정부이기에 우리는 국회의 법적 절차를 통해 구속력을 지닐 수 있는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7. 전망 및 과제


오늘날 북한의 핵문제 해결방식으로서 미국의 입장과 북한의 입장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다자간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 미국만의 책무가 아니라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 역내 관련국 그리고 모든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논리이다.

또한 다자해결의 필요성으로서 북미간의 쌍무적 관계로 해결하게 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미국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자협의 방식으로서 5+5(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남한 북한 일본 EU 호주) 또는 5+2(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한국 일본) 등이 거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입장은 다자간 협의를 통한 해결방식이 아니라 북미간에 협상을 통한 양자 해결방식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리하여 지난해 10월25일 북미간에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했으며 금년 1월10일 NPT 탈퇴 정부성명에서 `미국이 압살정책을 중지한다면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북미간에 별도의 검증을 통해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법적 보장(미 의회 승인을 통한 조약 체결)을 한다면 IAEA가 아니라 북미간의 합의에 의해 미국의 우려사안(핵무기개발)을 공개하고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북한의 핵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들은 결국 다자협의방식 또는 북미간의 양자협의방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집약될 수가 있다.

다 알다시피 북한의 핵문제가 이처럼 크게 부각된 것은 다름아닌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적대정책은 미국의 세계적 범위에서의 패권적 군사전략의 일환으로서 북한을 `불량국가`, 즉 미국의 군사적 압살의 대상국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그 배경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문제로 부각된 북미관계는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정책을 분명하고 신뢰성 있게 포기할 때만이 그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악의 축` 발언을 취소하며, 불량국가로서의 핵선제공격 대상국에서 제외시키는 실질적인 전향적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이뤄져야만이 북한은 미국을 신뢰하게 될 것이며 또한 미 의회는 북한과의 불가침조약을 비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에 준조약이라고 볼 수 있는 1994년 10월 북미기본합의서도 지켜지지 않고 또한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합의한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 포기와 관계개선이라는 합의도 지켜지지 않았으며, 더욱이 전직 대통령이 합의한 그러한 것들이 부시 행정부에 의해 백지화되고 있는 상황들을 고려할 때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신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그러한 지난날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북한 체제보장에 대한 조약이 아니라 서면 형식의 방식은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하는 내용(체재보장)과 미국이 요구하는 문제(핵개발 포기)를 동시에 해결하는 일괄타결의 방식은 북한으로서는 원칙적으로는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 요구하는 것, 즉 자주권 보장, 불가침 확약, 경제제재조치 완화 등에 대해 일시적이 아닌 항구적인 보장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 남북간에는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해 남북한 우리 민족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민족적이며 주체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북에 있건 남에 있건 우리 민족의 이해관계에 저촉되는 외부적인 도전에 대해서는 운명의 공동체로서 다같이 하나되어 그에 공동대응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간 남북 당국 사이에는 물론 민간차원에서도 우리 민족을 위협하는 `엄중한 사태`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간다는데 합의를 한 바 있다. 이러한 민족공조의 합의는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통해 민족대단결 차원에서 그를 뒷받침해야 한다.

오늘날 북한 핵문제가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존엄을 지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외세와의 공조가 아니라 민족공조를 통해 이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앞에 제시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이며 화급한 과제로 볼 수가 있다.

따라서 그간 대북정책 수행에 있어서 한미공조, 한일공조 또는 한미일 3자공조라는 비자주적인 입장과 틀을 깨고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 예컨대 외부로부터의 도전이나 분단극복과 통일문제 등에 있어서 당연히 민족공조로서 대응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전망하건대, 결국은 미국이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과의 핵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요구조건이다. 부시 행정부는 줄곧 북한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겠다는 것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주장하는 불가침조약을 못 받아들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북한의 최소한의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한다면 하나된 남북한 온 민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며, 국제사회에서도 남북한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수호를 위한 투쟁을 적극 지지하리라는 것을 의심할 바 없다.

한편, 부시 행정부가 안하무인격으로 무모하고 무례하며 또한 상식에 어긋난 언동을 국제사회에서 거침없이 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서는 무력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로 인한 자위적 국방력이 비상히 강화되어 있다는데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자위적 국방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면 미국은 군사적 압살정책만을 추구할 것이 분명하며,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북한의 선군정치는 남북한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민족의 영예를 지킨다는 차원에서 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2003년 3월8일 범민련 서울본부와 범민련 후원회가 공동주최한 강연에서의 원고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0 112.160.110.45